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이상하다. 선발로테이션의 윤곽이 안 보인다.
9일 낮 10일 선발 투수가 발표됐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게 있다. 대부분 팀의 선발로테이션이 정돈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보통 구위가 좋은 순서대로 고정 로테이션을 하는 걸 대부분 팀이 파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신 표적 선발 투수가 판을 치려는 조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 개막 동시에 로테이션 파괴
개막 2연전을 돌아보자. 에이스 맞대결은 류현진과 송승준, 니퍼트와 나이트 매치업 정도였다. 대구에서는 LG가 에이스 주키치를 냈지만, 삼성은 차우찬을 냈다. 차우찬은 분명 삼성의 왼손 에이스다. 하지만, 지난 시즌 막판과 시범경기서는 실질적으로 윤성환의 투구 내용이 가장 좋았다. 류중일 감독이 차우찬을 낸 건, 다분히 LG 왼손 타자들을 의식하면서 차우찬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문학에서 마리오와 만난 KIA 서재응도 에이스라기보다 부상 투수가 많고 현 시점에서 KIA 선발진 중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이다. KIA는 윤석민을 일부러 10일 홈 개막전으로 빼놓았다. 개막 2연전보다 6연전의 첫 주인 이번주에 윤석민을 두 번 사용하기 위해서다.
8일 경기서는 더 했다. 표적 선발이 판을 쳤다. 대구에서는 LG가 무명 좌완 이승우를 냈다. 삼성이 전통적으로 낯선 왼손 선발 투수에게 약하다는 걸 알고 있는 김기태 감독의 승부수였다. 이승우가 8일 나왔다고 해서 LG의 2선발이 아니라는 것이다. 삼성도 이에 뒤질세라 장원삼으로 맞불을 놓았다. 장원삼이 2선발이라기보다 역시 LG 왼손 타자들을 의식한 등판이었다. 사직에서도 한화가 안승민을 냈다. 한화는 류현진을 제외하고 선발들이 고만고만한 실력이다. 안승민보다 베스나 박찬호가 시범경기서 미덥지 못했고 양훈이 지난해 롯데에 2패 평균자책점 5.64로 부진했던 게 한대화 감독의 마음에 걸렸을 가능성이 컸다. 문학에서는 SK가 지난해 KIA에 1승 평균자책점 3.68로 강한 윤희상을 냈고, 실제 윤희상이 완벽투를 선보이며 이만수 감독의 묘수가 통했다. 이날 딱히 2선발이라고 할 투수는 두산 김선우, 롯데 사도스키 정도였다.
▲ 명분보다 실리, 이길 수만 있다면…
긴 시즌을 치르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임시 선발, 혹은 표적 선발이 나서야 할 때가 있다. 로테이션을 정상적으로 도는 선발 투수가 갑자기 부상을 당하거나 부진할 경우가 있고, 우천 취소, 월요일을 활용해 로테이션이 하루 정도 뒤로 밀리거나 앞으로 당겨질 경우 '손 없는 날'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건 어느 정도 시즌이 지난 뒤이고, 올 시즌은 개막전부터 표적 선발이 나오고 있다. 10일 선발 투수만 봐도 LG 임찬규, SK 이영욱, 넥센 강윤구 등은 확실한 3선발이라 할 수 없다. 심지어 KIA는 이제 에이스 윤석민을 낸다. 이번주 6연전에 일찌감치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한 마디로 초반부터 승수를 많이 쌓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상대가 에이스를 낸다면, 굳이 에이스로 맞불을 놓지 않는다. 에이스 카드를 소진하고 지는 건 다음 경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신 세밀한 상대 데이터나, 투수들의 컨디션에 따라 투수를 기용하는 경향이 짙다. 상징적으로 1~5번 로테이션을 정해 순서대로 기용하는 것보다 승률이 높다고 판단할 경우 과감하게 그렇게 한다. 순간적으로 로테이션 순서를 바꾸는 걸 주저하지 않고,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스윙맨도 많다. 심지어 LG 김 감독은 “4월 한 달 선발을 변칙으로 짜놓았다”고 말했다. 명문보다는 실리를 내세워 시즌 초반부터 철저하게 승수를 쌓아 순위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각 감독들의 의지가 예상할 수 없는 선발 투수 기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각 팀의 정보전이 심화되고 있다.
▲ 모 아니면 도, 헝클어지면 다 무너진다
물론, 여기엔 근본적으로 삼성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선발 투수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믿을만한 선발 투수가 차고 넘친다면, 기량 좋은 순서대로 5명을 기용하면 된다. 굳이 표적 선발 투수를 등판시킬 이유가 없다. 어디까지나 변칙적인 운용이기 때문이다. 변칙은, 그 의도가 통하기만 한다면 마운드가 계획대로 착착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변칙을 사용하는 와중에도 야구라는 건 돌발 상황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 변칙에 또 다른 변칙을 가미한다면, 그러다 결과가 좋지 않다면, 선발은 물론이고 불펜까지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변칙 선발 기용이라는 건 투수들에게 매우 부담스럽다. 언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고, 실전 등판과 휴식의 간격이 불규칙적이라서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컨디션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예민한 성격의 투수들에겐 더더욱 독이 될 수 있다. 표적 선발을 시즌 초반부터 애용하는 팀의 시즌 초반 행보는 어떨까.
[개막 이튿날에 나와 호투한 표적 선발 이승우와 윤희상. 사진=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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