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롯데 양승호 감독은 좀처럼 자신이 돋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감독이라면 흔히 자존심을 내세워 자신의 지도력을 부각하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코치와 선수들에게 넘긴다.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 조인성 끝내기 홈런과 맞바꾼 최기문 코치의 자존심
지난 6일 인천 SK전을 치르던 롯데는 3-3 동점이던 9회말 선두 타자 유재웅에게 안타를 맞아 1사 2루 끝내기 실점 위기를 맞았다. 이에 양 감독이 투수를 마무리 김사율로 바꿨다. 그러자 SK 이만수 감독은 조인성을 대타로 내세웠다. 롯데는 고민에 휩싸였다. 조인성은 한방과 정확성을 겸비한 타자였기에 부담스러웠다. 더욱이 1루가 비워진 상황이었고, 조인성의 후속타자는 타격감을 찾아가던 정근우였다.
여기서 양 감독은 최기문 베터리 코치를 불러 포수 강민호에게 고의사구 사인을 내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최 코치는 “다음 타자 정근우가 타격감이 살아나고 있으니 조인성과 승부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는 의견을 냈고, 이에 양 감독은 “그럼 그렇게 하자”라고 최 코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결과는 초구에 끝내기 투런 홈런이었다. 최 코치의 의견을 받아들인 게 악수가 된 것이었다. 양 감독은 9일 부산 삼성전을 앞두고 “뒷 타자가 더 무서워 보이지? 야구는 지금 눈앞에 있는 타자가 제일 무서운 법이야”라고 말했다. 양 감독의 처음 지시대로 조인성을 고의사구로 내보냈다면, 최종 승부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적어도 조인성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을 리는 없었다. 그러나 양 감독은 “최 코치도 그러면서 배워가는 거야“라고 껄껄 웃었다.
▲ 위기도 막고, 송승준의 자존심도 세워준 양승호 감독
지난 8일 부산 삼성전을 치르던 롯데는 0-1로 뒤진 7회초 1사 2루 위기를 맞이했다. 점수를 더 줄 경우 위험한 상황에 이른다는 것은 6일 당시 상황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삼성은 추가점을 내기 위해 대타 채태인을 내세웠다. 그러나 송승준은 일부러 볼 4개 연속 바깥쪽으로 뺐고, 포수 강민호도 바깥쪽으로 반쯤 빠져앉아서 볼을 받았다. 결국 채태인을 볼넷으로 1루에 출루시켰지만 송승준은 이후 이정식과 정형식을 차례로 삼진 처리하며 위기를 넘겼다.
양 감독은 이에 대해 “내가 지시한 거야”라고 말했다. 결국 고의사구를 지시했다는 뜻인데, 강민호는 일어나지 않았다. 양 감독은 “그래도 송승준이 우리팀 에이스인데, 에이스 자존심이 있지 그 상황에서 일어나서 공을 빼라고 하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어”라고 말했다. 채태인이 분명 잘 맞고 있는 타자도 아니기 때문에 송승준의 자존심을 건드릴 것을 염려한 양 감독이 송승준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이다. 그러면서 양 감독은 혹시 모를 채태인의 일발장타를 봉쇄하는 효과도 얻었다. 말 그대로 일석 이조의 효과를 봤다.
▲ 다른 사람을 치켜세우는 리더십
양 감독이 강민호에게 일어서서 고의사구를 지시한 뒤 후속타자에게 실점을 하지 않을 경우 자신의 자존심을 세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마운드 위의 투수, 특히 에이스의 경우 감독의 지시를 따르겠지만 속으로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대게 그럴 경우 투수는 좋지 않게 마운드를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양 감독은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으면서 송승준의 자존심을 세워줬고,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또한 양 감독이 본인의 승부수 대신 최 코치의 작전을 허락한 걸 두고 “감독이 쉬운 게 아니야. 본인도 공부가 많이 됐을 거야”라고 말한 건 실제로 뼈아픈 1패를 안긴 했지만, 역설적으로 최 코치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도 결과적으로 최 코치 스스로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비록 패배했지만 양 감독은 최 코치에게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았다. 대신 최 코치에게 승부와 작전에 대해 공부를 하는 계기를 만들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감독의 어려움을 맛보게 했다. 아마도 최 코치는 양 감독의 선수 운용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을 내려놓고, 코치와 에이스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지나고 나니, 그게 결국 양 감독 본인의 지도력이 돋보인 대목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최기문 베터리 코치와 송승준은 양 감독의 속 깊은 마음을 알고 있을까.
[코치와 에이스의 자존심을 세워준 양승호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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