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종합
'자살연습' 파문, 사건 덮기 급급했던 시 교육위원회에 비난 쇄도
일본 시가(滋賀) 현 오쓰(大津) 시에서 작년 10월, 집단 따돌림(이지메いじめ)를 견디지 못하고 중학교 2학년 남학생(13)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집단 따돌림을 가한 학생들이 피해 학생에게 '자살연습'을 강요했던 것으로 드러나 뒤늦게 큰 파문이 일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자, 오쓰 시 시장이 직접 나서 눈물의 회견을 열고 사건의 재조사를 다짐했다.
자살 사건이 일어난 뒤, 학교 측은 사건 직후 이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일부 학생들로부터 '피해 남학생이 자살연습을 강요당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 교육위원회는 이를 공표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시와 시 교육위원회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시 교육위원회가 그동안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 "자살과 집단 따돌림(이지메)의 인과관계는 판단할 수 없다"며 사건의 확대를 막으려는 자세를 견지해왔기 때문에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컸다.
일본 전국으로부터 항의가 쇄도하자 결국, 오쓰 시의 고시 나오미 시장은 6일,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고, 재조사 실시를 약속했다. 그러나 산케이 신문은 뒤늦은 조치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절하했다.
◆ 사건 덮기에 급급했던 오쓰 시 교육위원회
비공개였던 일부 설문조사 내용이 밝혀진 것은 이달 3일.
"(자살한 남학생이) 점심시간에 매일 자살연습을 강요받았다", "(가해 학생이) 자살 방법을 연습하라고 말했다"는 응답을 같은 학교의 재학생 16명으로부터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설문조사에는 "(동급생이) 강하게 가슴, 배, 얼굴을 때리고 발로 찼다"는 폭력 현장을 목격한 증언도 있었다. 게다가 "교사도 봤지만, 못 본척 했다", "한 번 교사가 가해 학생들에 주의를 주었지만, 그 후에는 같이 웃고 있었다"며 교사가 이지메를 방치했다는 응답도 14명의 학생에게서 나왔다.
이 설문조사는 남학생이 작년 10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직후, 학교 측이 이 학교 전체 학생 8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다. 약 80%로부터 응답을 얻었고 시 교육위원회도 작년 11월 시점에 남학생이 동급생으로부터 이지메를 당한 사실을 인정했다.
가해 학생이 죽은 남학생에게 죽은 벌을 먹도록 강요하거나 목을 조르거나 머리에 쓰는 스프레이를 뿌리는 등 처참한 이지메 실태도 드러났다.
그러나 시 교육위원회는 이전까지 "자살연습을 강요받았다"거나 "교사가 이지메를 방치했다"는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비공표에 관해 시 교육위원회는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의 신빙성이 낮다고 생각했다. 감추려 한 것이 아니다. 설문조사에서 학교가 사실이라고 판단한 내용만을 공표했다"고 해명하고 "추가 조사할 예정은 없다"고 답했다.
시 교육위원회의 말인즉 '자살연습'이라는 응답은 모두 전해 들은 이야기이며 '교사의 이지메 방치'도 14명의 응답자 중 13명이 전해 들은 내용이라 공표하지 않았다는 논리다.
설문조사 답변이 전해 들은 이야기라면, 직접 물어 확인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 학생들의 용기있는 목소리를 무시한 처사로, 이대로라면 사실 은폐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일본 언론의 시각이다.
문제가 발각된 이래 시 교육위원회에는 "정확히 설명해라", "인정하고 사죄하라" 등의 항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TV 뉴스에도 이 사실이 전해지면서 시 교육위원회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던 고시 시장에 대한 비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올 1월 취임한 고시 시장은 지난 3월 남학생이 다닌 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자신도 초등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지메를 당했다고 연설했다.
"지금까지 2번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며 눈물을 머금고 고백하며 "이지메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며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자살연습'이 발각되고 시에 항의가 쇄도해도 이와 관련된 의견을 밝히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주도권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피해 남학생의 부모는 올 2월, 집단 따돌림을 가한 동급생 3명과 그 보호자, 그리고 오쓰 시를 상대로 약 7,720만 엔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오쓰 시는 "자살에 과실 책임은 없다"며 전면적으로 싸울 자세를 나타냈다.
게다가 5월 열린 첫 구두변론에서 시는 "어떤 교원이 어디에서 집단 따돌림(이지메) 행위를 목격하고 방치했는지 구체적인 지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남학생의 아버지는 "이지메로 죽고 싶다는 심정을 체험을 통해 느꼈다는 고시 시장이 이지메와 자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다니 믿을 수 없다. 이지메를 고백한 그 연설은 정치적 퍼포먼스였던 것인가? 그렇다면 죽은 내 아들을 퍼포먼스에 이용한 것이 된다"며 고시 시장을 비난했다.
또한, "학교 측은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감추지 말고 밝히는 것이 도리일 것"이라며 학교 측에 조사 결과를 명명백백 공표하라고 요구했다. 이 같이 요구한 지 1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에 '자살연습' 등 시 교육위원회가 중요한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7월 17일 두 번째 구두변론에서 남학생의 부모는 '자살연습'이나 교사의 이지메 방치 등에 대해 밝힐 예정이다.
고시 시장은 지난 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사를 다시 하겠다. 전문가로 이루어진 조사위원회를 설립하겠다"고 밝혀 본격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자세를 나타냈다. 또한, "자살연습이 사실이라면 애처로운 이야기다. 시장 취임 뒤 바로 조사에 나섰어야 했다"며 반성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취임한 지 반년이 다 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시장으로서의 자질에 큰 의문점을 남겼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편, 이지메 문제가 일본 사회의 크나큰 병폐가 되고 있는 가운데 교육 현장이나 당국의 태도,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도 '그때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올 2월 공표한 이지메 실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010년 일본 당국이 파악한 이지메 건수가 전년도보다 4,852건이나 증가한 7만 7,630건에 이르렀다.
2010년 10월 군마 현의 초등학생 6학년이 자살한 사건 등 지난해 이지메에 의한 자살 사건이 크게 늘었고, 문부과학성이 전국 초·중·고 90% 이상의 학교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해 사태 파악을 서둘렀다. 그 결과, 이지메 사건이 한 해 만에 대폭 증가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은 전했다.
2006년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있었다. 이지메 자살이 사회 문제화된 2006년, 이지메에 대한 정의를 피해자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피해자가)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는 것" 등으로 이지메를 새롭게 정의했다.
새로운 정의에 따라 이지메 실태가 다시 집계됐고, 전년보다 6배나 많은 12만 5,000건이라는 급격한 증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7년 2만 4,000건으로 줄더니 2009년까지 계속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학생이 자살하는 문제가 일어나면 일시적으로 사회 전체가 이지메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지만, 그 이후에는 점차 낮아지는 경향이 강하다"며 지속적인 감시와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작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등 이지메와 학교폭력에 자유롭지 못한 한국 사회가 흘려 들어서는 안되는 문제임이 틀림없다.
안병철 기자
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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