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너는 4년 동안 내 뒤통수만 치고 가냐?”
넥센은 지난 9일 오재일을 두산에 보내고 이성열을 받아왔다. 이성열에 무게가 실린 트레이드라 하는 사람이 많지만, 오재일도 김 감독이 열 손가락을 깨물었을 때 가장 아픈 손가락 중 하나였다. 김 감독은 올 시즌 초반만 해도 박병호와 함께 오재일을 1루 요원으로 경쟁시키고 싶어 했다. 스프링캠프에서 박흥식 타격 코치의 레이더망에 걸려 집중 지도를 받은 이도 다름 아닌 오재일이었다.
▲ “재일아, 자신있게 해라”
오재일은 김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의 현실은 2005년 입단 후 자리 잡지 못한 만년 유망주였다. 지난해 이적한 박병호에겐 완벽하게 밀렸고, 지명타자로도 자리잡지 못했다. 1,2군을 오가다 결국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왼손 강타자가 부족한 넥센에 오재일은 분명 아쉬운 카드다.
12일 인천 SK전을 앞두고 김 감독은 트레이드가 확정된 뒤 오재일과의 대화 내용을 전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그에게 김 감독이 “너는 4년 동안 내 뒤통수만 치고 가냐?”라고 짐짓 쏘아붙였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오재일은 “감독님, 그동안 정말 죄송했습니다”라고 고개를 푹 숙였다고 한다. 그제서야 김 감독도 본심이 드러났다. “재일아, 두산에서도 자신 있게 해라.” 스승의 따뜻한 격려에 오재일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김 감독은 짐을 챙겨 잠실로 떠나는 오재일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비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경쟁, 트레이드는 비일비재하지만, 4시즌간 함께해온 제자를 보내는 김 감독의 마음이 좋을 리 없다. 김 감독은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산 가서 1년 뒤에 빵 터질 지 누가 아나. 재일이가 진심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
▲ 클린업 트리오, 지금 보다 더 잘할 수 없다
이어 김 감독은 올 시즌 넥센의 히트 상품이 된 이택근-강정호-박병호의 중심 타선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성열이가 와서 4, 5번에 자리잡으면 나도 좋다. 하지만, 잘 된다는 보장보단 오히려 타순을 흔들 경우 잘 안 풀릴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이-강-박 클린업 트리오를 흔들지 않겠다는 말이다.
올 시즌 넥센 클린업 트리오는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13일 현재 41홈런 150타점을 합작했다. 강정호와 박병호는 홈런 1위와 3위이고, 타점에서는 박병호가 1위이고 강정호가 4위다. 특히 김 감독은 올 시즌 단 한번도 박병호의 4번 타순을 흔들지 않았다. 김 감독이 이성열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게 아니라 그만큼 기존 중심 타자들에 대한 믿음이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김 감독은 “지금 이상 어떻게 더 잘할 수 있나. 내가 지금보다 얘들이 더 잘해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그건 선수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셋 중 가장 성적이 처지는 이택근을 두고서도 “보이는 기록보다 상황에 맞는 플레이를 잘 한다”라고 은근슬쩍 치켜세웠다.
넥센은 현재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기세는 아니다. 한때 선두까지 올랐던 순위도 내려갔다. 그래도 올 시즌에는 뒤처지지 않고 꾸준히 3~4위권을 지킨다. 김 감독의 믿음 야구가 완벽하게 뿌리내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 감독은 냉정하게 오재일을 내보냈지만, 그에겐 품에 안고 있는 자식들과, 품에서 떠나 보낸 자식 모두 더 없이 소중하기만 하다.
[김시진 감독(위), 오재일(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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