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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구리 김진성 기자] “첫 경기 이후 도망가고 싶었어요.”
KDB생명 이옥자 감독은 국내 최초의 프로농구 여자 사령탑이다. KDB생명은 지난해까지 함께해오던 김영주 감독 대신 과감하게 베테랑 여감독을 선택했다. 그녀를 보좌할 코치로는 감독급 인사 이문규 코치를 영입했다. WKBL 6개 구단 중 가장 젊은 컬러를 갖고 있는 팀이지만, 코칭스텝 구성은 가장 중량감 있게 꾸렸다. 이 감독과 이 코치의 지도자 경력을 합치면 국내 남녀프로농구 코칭스텝 중 따라올 팀이 없다.
▲ “내 시행착오다. 감독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이 감독은 과거 80년대 신용보증기금 코치를 시작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후지쯔와 샹송화장품을 이끌었다. 샹송화장품에서 우승도 이끌었고, 현재 신한은행에서 뛰는 하은주의 성장을 돕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올 시즌 WKBL에 도전장을 냈다. 프로 세계엔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지만, 한국 농구계 대모로 보면 된다.
26일 구리에서 열린 KB전을 앞두고 이 감독을 만났다. 첫 마디부터 솔직 화법 그 자체였다. “우리은행과 개막전을 홈에서 했는데, 팬도 많고 회사에서도 많이 응원을 오니까 정신이 없었다. 첫 경기를 지고는, 이거 죽겠다.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다”라고 했다. 이어 “아마추어 감독만 했지 프로는 처음이다. 몇 경기 해보니까 다른 감독들 벤치 운영이 정말 노련하다. 감독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라고 했다.
KDB생명은 이날 전까지 1승 2패다. 최강 신한은행을 견제할 후보 1순위로 꼽혔지만, 시즌 출발은 삐걱거린다. “내 시행착오다. 아마추어처럼 경기 운영을 한 부분도 있었다. 후회한다. 시즌 개막 직전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에 실패했다. 부상자들도 나왔다”라고 했다. 이어 “다 내 잘못이다.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해주고 있다”라고 했다.
KDB생명은 현재 주전 포워드 조은주의 어깨 상태가 좋지 않다. 김보미는 개막 직전 무릎을 다쳐 관절경을 집어 넣는 간단한 수술을 한 뒤 이날 KB전으로 돌아왔다. 이경은과 짝을 맞출 가드 김진영도 허리가 좋지 않아 결장했다. 이들과 함께 한채진, 신정자 등이 만들어 나가는 유기적인 움직임이 특장점인 KDB생명이다. 그러나 지금 KDB생명은 예년의 톱니바퀴 조직력을 뿜어내진 못하는 실정이다. 이 감독은 그것에 대해 자신의 시행착오가 컸다고 실토했다.
▲ 최초 여성 농구 감독이란 부담감, 그래도 평가는 섣부르다
이 감독은 지금 부담이라는 또 다른 적과 싸우고 있다. 국내 최초 여성 농구 감독이다. 국내 프로스포츠를 통틀어서도 지난해 여자프로배구 GS 칼텍스를 지휘했던 조혜정 전 감독에 이어 두번째 여성 감독이다. “주위에서 기대를 하는 게 있다. 나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느껴진다. 솔직히 그게 좀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시즌 초반 출발이 좋지 않으니 요즘 나이 60세의 이 감독은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 감독이 짊어져야 할 숙명이다. 이겨내야 한국 스포츠계에 만연한 여성 감독 불신풍조가 조금이나마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돼야 KDB생명도 숙적 신한은행을 누리고 정상에 오르려고 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가 있다. KDB생명은 여전히 이 감독을 신뢰하고 있다. 이 감독은 지나치게 부담스러워하거나 초조할 필요가 없다.
솔직하게 부담감을 털어놓은 이 감독. 하지만, 죽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보미는 자기가 경기에 나서고 싶어한다. 예뻐죽겠다. 다른 선수들도 정말 열심히 한다”라고 한 뒤 “아직 내 농구가 나오지 않았다. 선수들이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내겠다”라고 했다.
KDB생명은 이 감독이 일본에서 성공했던 특유의 끈끈한 농구를 KDB생명에도 이식시키길 원한다. 시즌 초반 다소 부진해도 KDB생명과 이 감독이 이대로 무너질 것이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직 국내 첫 여성 농구 감독 이옥자를 평가하긴 너무나 섣부르다. 그녀는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일궈낸 게 많은, 경험 많은 노감독이다. 부담스러울지언정 부러질 사람은 절대 아니다.
그녀가 성공해야 한국여자농구에도 다양성이 생기고 볼거리가 늘어난다. 이 감독의 손짓 하나에 여자농구의 부활이 걸려있다. 때마침 KDB생명은 26일 2차 연장 접전 끝에 KB를 꺾고 시즌 2승째를 따냈다. 이 감독도 “움직임이 많이 살아났다”라고 칭찬했다. 지금은 이 감독과 KDB생명을 좀 더 지켜볼 때다.
[이옥자 감독.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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