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선동열 감독님 그림자를 벗어나고 싶었다.”
삼성이 1일 한국시리즈 2연패를 확정한 직후 류중일 감독을 덕아웃 앞에서 만났다. 원래 솔직담백하기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대업을 달성하고 나니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말을 꺼냈다. “작년에 우승하니까 선동열 감독님이 만들어 놓은 토대에서 손쉽게 했다고 하더라. 올해는 선 감독님의 그림자를 지우고 싶었다. 삼성이 선동열 감독님이 만들어 놓은 팀이라는 인식을 지우고 싶었다”라고 작심한 듯 말했다.
▲ SUN의 그림자? 류중일은 자존심이 상했다
류중일 감독은 상남자다. 지는 걸 무척 싫어한다. 골프를 잘 쳐야 사회생활을 잘 하겠다고 생각한 류 감독은 선수시절 막판 골프를 잘 치는 지인에게 배우고 또 배웠고, 독학을 통해 익혔다. 지금은 야구인들 중에서 NO.1급이라는 게 야구 관계자의 귀띔이다. 선수들과도 시즌을 앞두고 돈내기를 건다. 선수의 자존심을 자극해 분발하기를 바라는 류 감독 고도의 용병술이다. 선수들과의 내기를 제외하곤, 류 감독은 남들에게 ‘잡기’에서 진 기억이 드물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런 류 감독에게 선동열 감독은 거대한 산이었다. 류 감독은 1999년 선수생활을 마친 뒤 삼성에서 수비, 주루 코치를 역임했다. 그는 2004년 수석코치에 이어 2005년 감독석에 앉은 선 감독을 6년간 코치의 위치에서 모셨다. 그러면서 선 감독의 지키는 야구 요체를 익혔고, 선 감독이 2010년을 끝으로 운영위원으로 물러서자 선 감독의 야구에 자신의 야구를 덧씌우려는 작업을 시도했다.
쉽지 않았다. 2011년, 삼성은 기존의 지키는 야구를 바탕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6년간 굳어있던 팀 컬러를 1년만에 바꾸는 건 어려웠다. 류 감독은 선발투수들에게 좀 더 책임감을 부여했고, 선수들이 좀 더 잘 뛰어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런 건 티가 잘 나지 않는 부분이다. 분명 삼성은 2010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에서 2011년 우승팀으로 격상됐지만 “기존 우승팀들이 부진했다” “선동열 감독이 만든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얹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말들이 지기 싫어하는 승부근성의 소유자 류 감독의 자존심을 긁었다.
▲ 공격야구 실현, 2년만에 팀 컬러 바꿨다
류 감독은 2012시즌을 이를 갈고 준비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색채를 투영했다. 이승엽의 복귀를 계기로 중심타선의 화력을 극대화했다. 중심타자들에겐 철저하게 믿음을 줬고, 정형식과 이지영은 다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주전 멤버로 급성장했다. 타자들에게 적극적인 타격을 주문했다. 투수 파트에선 철저히 오치아이 에이지 코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주전공인 수비에선 좀 더 촘촘하고 세밀한 훈련을 주문했다.
그 결과 삼성은 올 시즌 팀 평균자책점 3.39, 팀 타율 0.272로 모두 1위에 올랐다. 이뿐 아니라 팀 득점 1위(628), 팀 타점 1위(585), 팀 홈런 3위(89개), 팀 득점권 타율 2위(0.273)를 차지했다. 화끈한 공격야구가 실현됐다. 물론 팀 실책 최소 2위(67실책), 팀 블론세이브 최소 1위(5개), 팀 홀드 1위(71개), 팀 피안타율 최소 2위(0.247), 팀 WHIP 1위(1.24) 등 지키는 야구도 여전했다.
류 감독은 2011년에 비해 멤버 변화가 적었음에도 팀 컬러를 바꿔놓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제 삼성은 더 이상 선 감독 시절의 ‘지키는 야구’만을 추구하는 팀이 아니다. 확실히 당시보다 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됐다. 류 감독은 이제 선 감독의 그늘을 벗어났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 관리야구 신봉자로 거듭나다
류중일 감독은 직접 나서는 스타일은 아니다. 파트별 코치에게 선수 훈련과 관리까지 모두 맡기고, 철저하게 보고를 받은 다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스타일이다. 아픈 선수가 있다면 되도록이면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박석민이 시즌 종반 손가락 통증을 다시 호소하자 일본에 보내 주사를 맞게 했다. 이승엽도 시즌 후 중지에 주사를 맞고 오도록 했고, 팔꿈치 통증이 있던 권오준도 일본에서 정밀 검진을 받게 했다.
최선을 다하고, 싹이 보이는 선수에겐 무한 믿음을 줬다. 선발투수에게 믿음을 주면서 긴 이닝을 끌 수 있게 했다. 동시에 불펜 투수들은 오치아이 코치의 도움을 받아 철저하게 관리를 했다. 배영섭, 최형우, 차우찬을 2군에 보내기까지 팬들의 무차별 질타를 받았지만 묵묵히 인내했다. 채태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지만 최형우와 배영섭은 한국시리즈서 맹활약하며 스승의 믿음에 보답했다. 옆구리 통증으로 부진하던 박석민도 결국 한국시리즈 6차전서 제 몫을 했다.
류 감독은 적재적소에 선수를 기용할 줄 아는 지도자다. 권오준이 부상으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빠지자 심창민을 중용해 미래를 내다봤고, 이지영도 백업 포수로 기용했다. 신명철이 부진하자 자신의 포지션을 잃고 방황하던 전천후 내야수 조동찬을 주전 2루수로 중용했다. 채태인이 빠진 뒤 최형우가 지명타자로 돌자 발 빠르고 열심히 뛰는 정형식을 적극적으로 중용했다. 오른손 대타가 필요할 땐 베테랑 강봉규를 잊지 않았다.
삼성 특유의 두꺼운 선수층 속에서도 선수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활용해 개개인 능력치를 극대화했고, 팀 전력 강화로 연결시켰다. 한 야구 관계자는 “류 감독이 선수단 관리를 참 잘한다. 관리야구”라고 했다. 믿음과 관리, 그 속의 변화. 류중일 관리야구의 요체이자, 삼성의 정규시즌-한국시리즈 2연패 원동력이었다.
▲ SUN 이어 감독데뷔 2년 연속 통합우승
류 감독은 2005년~2006년 감독으로 데뷔하자마자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2연패를 차지한 선동열 감독에 이어 2011년과 2012년 역시 감독으로 데뷔하자마자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2연패를 차지한 두번째 감독이 됐다. 이것 역시 선동열 감독의 기록을 따라간 것이다.
물론 류 감독은 이미 선동열 감독의 그림자를 벗어났다. 이제 선 감독을 완벽하게 넘어서려면 내년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3연패가 필요하다. 이는 아직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단 한번도 없었던 대기록이다. 선 감독 역시 해내지 못한 기록. 류 감독이 통합 3연패를 이끈다면 관리야구의 신봉자라는 타이틀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명장 수식어를 달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유력한 WBC 대표팀 감독직 수행도 류 감독의 역량을 또 한번 평가하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우승 메달을 목에 건 류중일 감독(위), 경기를 관전하는 류중일 감독(중간), 헹가래를 받는 류중일 감독(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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