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매년 반복되는 불편한 장면 연출이다.
프로야구 9개 구단이 25일 2013년 보류선수 명단을 KBO에 통보했다. 이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는 구단이 보유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다른 구단과 자유롭게 입단 협상이 가능하다. 이 선수들을 흔히 말하는 ‘방출자’라고 표현한다. 통상적으로 각 구단은 늦어도 11월 중 방출자 명단을 개개인에게 통보한다. 어차피 다음 시즌 준비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신인들이 합류해야 하고, 방출자들에게도 다른 팀을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 구단들은 젊은 선수들을 키우고 싶은데…
방출자 대상은 두말할 것 없이 실력이 기준이다. 2군에서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거나, 부상 재활에도 회복 기미가 없어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것이 없는 선수는 방출 1순위다. 그런데 이 기준이 베테랑들에겐 좀 다르게 적용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베테랑들은 성적 잣대에 대한 기준이 높다. 그 기준을 충족시켜주지 못할 경우 어김없이 방출, 곧 은퇴로 내몰린다.
구단 입장에선 베테랑들보단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 누구도 의심할 여지 없이 성적을 확실히 낸 선수가 아니라면 30대 중반 이상의 베테랑들은 한해 한해 성적이 방출 여부에 직결된다. 베테랑들의 해당 포지션에 가능성이 있는 젊은 선수가 많을수록 구단들이 바라보는 베테랑들의 성적 커트라인은 높다.
사실상 베테랑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은 독보적인 성적을 올렸거나 혹은 해당 포지션에 젊은 선수들이 적은 상황. 마지막으로 계약 관계로 구단이 마음대로 풀어줄 수 없는 경우에 한정된다. 이 케이스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구단은 베테랑 선수에게 방출을 통보한다. 본격적인 구단과 베테랑들의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 받아들일 수 없는 베테랑들, 불편한 동거의 시작
베테랑들은 당연히 은퇴가 싫다. 올해 좀 부진했어도 좀 더 체계적으로 시즌을 준비하면 젊은 선수들을 이길 자신이 있다. 몸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알지만, 최소한 자존심을 세울 기회를 갖고 싶어 하는 베테랑들도 있다.
반면 구단들은 기본적으로 베테랑들에게 최소한의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고 한다. 일단 베테랑들과 신인급 선수가 1군에 들어갈 경우 베테랑들의 무게감을 고려해 기회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고 그러는 사이 세대교체가 늦어지기 때문이다. 구단 입장에선 시즌 중 껄끄러운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 되도록 비시즌에 베테랑들과의 관계를 좋게 정리하려고 한다.
최근 몇몇 팀들 베테랑들과 구단의 미묘한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대부분 현역 1년 연장에 합의했다.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다. 불편한 동거의 시작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1년 뒤 똑같이 구단과 얼굴을 붉힐 가능성이 크다. 30대 중, 후반에 들어선 베테랑들이 한 시즌 부진할 경우 기회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다음 시즌 대반전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근본적인 해답이 안 보이는 게 문제다. 끝없는 평행선이다. 한국야구 시장의 현실상 트레이드도 쉽지 않다. 어느 한쪽이 결국 물러서야 하는 치킨 게임 양상인데, 대부분 베테랑들이 은퇴 위기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다른 팀에서 선수생활을 재개하는 건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모든 팀이 젊은 선수를 키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구단들, 베테랑들의 목소리에 한번 더 귀를 기울이자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은퇴 위기에 몰린 베테랑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의외로 자신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걸 구단 앞에서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구단은 1군에서 백업 요원으로 쏠쏠히 활용할 수 있다. 또 구단들은 이런 선수들의 은퇴 뒤엔 지도자 연수 및 프런트 전업 등의 기회를 열어주기도 한다. 구단이 어떻게든 베테랑들의 활용방안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내치려고 할 때 베테랑과 구단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곤 한다.
가장 관계 정리가 어려운 케이스는 전성기가 화려했던 구단 프렌차이즈, 혹은 팀에서 무게감이 남달랐던 베테랑들이다. 이들은 구단이 최대한 예우를 해주려고 해도 선수가 가장 좋았던 시절을 잊지 못해 현역을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간혹 누가 봐도 실력이 떨어진 베테랑들이 고집을 부리는 경우도 있긴 하다.
구단이 베테랑들의 입장을 좀 더 고려해줄 필요가 있다. 선수의 뜻을 받아들여 확실하게 부활의 기회를 주거나, 조건 없이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도와주는 것이다. 2010시즌 후 삼성과 박진만이 이런 케이스였다. 김상수를 키우고자 하는 삼성과, 기회를 더 얻고 싶어하는 박진만은 깔끔하게 결별했고, 박진만은 SK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과 박진만 모두 박수를 받았다.
아무리 베테랑들이라도 실력이 없으면 주전에서 밀려나고, 팀에서도 방출될 수 있다. 그래도 구단들은 베테랑들의 활용방도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는 찾아야 한다. 최근 몇 년간 국내야구는 급격히 연령층이 젊어지면서 하향평준화 논란이 일었다.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덜 여물었기 때문인데 이럴 때 구단들이 베테랑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경기력도 좋아질 수 있고, 세대교체가 좀 더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 베테랑 자신도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돌아볼 수 있다.
베테랑들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한 감독과 그런 감독을 믿어준 팀은 전통적으로 성적이 좋은 경우가 많았다. 실력을 떠나 나이가 선수 생명을 재단하는 잣대가 돼선 안 된다. 선수도 자신의 현실을 직시해야 하고, 구단도 선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 더 뛸 수 있어”라는 베테랑들의 외침, 구단이 그들의 목소리에 한발짝 더 다가섰으면 한다.
[잠실구장(위), 목동구장(가운데, 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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