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윤욱재 기자] 한국프로야구에 제 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1군 무대에 데뷔한 해는 1991년이었다.
첫 해에 '7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킨 쌍방울은 하위권을 전전하다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새 바람을 일으킨다. 1996년 해태(현 KIA) 타이거즈에 이어 정규시즌 2위에 오른 쌍방울은 1997년에도 정규시즌 3위에 오르며 강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IMF 파동으로 모기업의 재정이 급격히 악화된 쌍방울은 '안방마님' 박경완을 현금 9억원에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시키고 1998년 6위에 그친 뒤 투타 간판인 김기태와 김현욱을 삼성 라이온즈에 20억원이란 트레이드 머니를 받고 팔아 넘기며 1999년 매직리그 최하위로 처졌다.
쌍방울은 끝내 해체 수순을 밟았고 SK 와이번스가 창단하면서 기존 쌍방울 선수단을 흡수하는 것으로 겨우 8개구단 체제가 유지됐다. SK는 전력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하위권을 맴돌다 2003년 조범현 감독을 선임하고 FA 시장에 나온 박경완을 영입하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그 해 SK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결과는 준우승이었지만 SK는 이후 강팀으로 도약할 기틀을 마련했다.
2007년 김성근 감독 시대가 열리면서 SK는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했다. 2007년과 2008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2010년에도 한국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올해는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란 전인미답의 고지를 밟았다.
IMF 시대에 쌍방울과 함께 몰락한 해태는 2001년 KIA에 인수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쌍방울로부터 선수를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해 전력을 보강했던 현대는 재정이 약화되면서 2007년을 마지막으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 우리(현 넥센) 히어로즈가 창단하면서 겨우 8개구단 체제가 유지됐다.
설명이 길었다. 제 8구단이 창단하고 제 9구단이 생기기까지 세월이 얼마나 많이 지났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쌍방울이 1991년에 데뷔한 이후 무려 22년 만이다. 제 9구단 NC 다이노스가 드디어 출격한다. NC는 올해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내년을 향한 신호탄을 쐈다.
NC의 데뷔는 쌍방울의 그것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NC는 쌍방울과 달리 외국인 선수 3명을 영입할 수 있는 특혜를 얻었고 FA 선수 영입으로 모자란 전력을 채울 수 있게 됐다.
22년 동안 한국프로야구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가 생긴데 이어 1999년에는 FA 제도가 문을 열었다. 쌍방울이 창단하면서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을 NC는 가질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 만큼 NC의 창단은 의미가 크다. 한국프로야구는 늘 고비의 연속이었다. 구단 수가 늘어날 것을 희망하기 전에 8개구단 체제가 유지되지 못할 것을 걱정해야 했다. 그러나 2006년 WBC에서의 활약으로 점진적으로 관중수가 늘기 시작하더니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야구 인기는 절정에 치닫기 시작했다.
500만, 600만을 넘어 700만 관중 시대를 맞이한 지금, 한국프로야구는 전 경기 생중계 시대가 개막하면서 '최고의 컨텐츠'로 자리매김했으며 마침내 '9구단 시대'를 열 수 있었다.
22년 동안 숱한 고비를 넘긴 끝에 '봄날'이 찾아왔다. 9구단 창단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팬들의 성원으로 전국적인 인기 스포츠로 자리한 한국프로야구. 이제는 보답해야 할 일만 남았다. 10구단 창단으로 원활한 리그 진행을 이끌어야 하고 낙후된 구장 시설을 현대화해 관중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제 8구단 쌍방울과 제 9구단 NC의 데뷔 간격이 왜 22년이 걸렸는지 되새겨 본다면 앞으로 야구계가 '할 일'이 무엇인지는 자명한 일이다. 22년의 세월은 한국프로야구에 많은 교훈을 가져다주는 것이 분명하다.
[사진 = 마산구장(NC 다이노스 제공)]
윤욱재 기자 wj3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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