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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시쳇말로 멘탈붕괴다.
레슬링계가 날벼락을 맞았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12일 집행위원회서 레슬링을 2020년 하계올림픽부터 핵심 종목에서 제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IOC는 향후 한 종목을 추가로 핵심종목에 넣을 예정이다. 2016년 리우올림픽과 2020년 하계올림픽에선 26개 핵심종목에 골프와 럭비를 추가해 총 28개 종목을 정식종목으로 채택할 예정이다.
▲ 고대올림픽부터 채택된 레슬링, 왜 퇴출됐나
레슬링은 고대올림픽과 근대올림픽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순수하게 몸과 몸을 부딪혀 힘과 기술을 겨루는 스포츠였다. 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텡이 강조한 올림픽 정신에 가장 적합한 스포츠다. 이런 레슬링에 퇴출 위기가 찾아온 건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전후한 시점이었다.
대한레슬링협회 관계자는 13일 마이데일리와의 전화통화서 “시드니올림픽 때 퇴출설이 한 차례 있긴 했다. 그래서 파테르 방식 변경, 세트제 도입 등 룰 변경을 시도했고 아테네올림픽에선 여자 자유형도 채택했다. 이후론 별 말이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이후 레슬링은 꾸준히 룰 변경을 통해 사람들에게 재미있고 역동적인 스포츠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노력을 했다. 최근에도 세계레슬링연맹이 파테르 규정의 파격 변신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나 돌아온 건 2016년 리우올림픽을 끝으로 퇴출이다. 레슬링이 근본적으로 힘 대 힘 승부이다 보니 수비전술도 발달했고, 룰 변화 속에서도 지루한 감이 있었다. 또 너무 자주 룰이 바뀌면서 헷갈린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관계자는 “세계레슬링연맹도 IOC 발표 15분 전에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뒤늦게 퇴출설을 피부로 느끼면서 대처가 안이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IOC 집행위원회는 근대5종, 태권도 등과 함께 레슬링을 최종 탈락 후보 종목에 포함한 뒤 투표를 실시해 레슬링의 퇴출을 공식 결정했다. 그러나 세계레슬링연맹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16일에 세계레슬링연맹 집행위원회가 열린다. 향후 대처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대한레슬링협회도 집행위원회에 직원을 긴급파견하기로 했다.
▲ 망연자실 레슬링협회
대한레슬링협회는 지금 시쳇말로 멘탈붕괴다. 협회 직원들은 12일 IOC의 결정에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했다는 소식이다. “태권도는 원래 퇴출위기였지 않나. 레슬링이 이렇게 될 줄은”이라면서도 한 숨을 푹 쉰 뒤 “결국 로비에서 밀린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세계레슬링연맹이 IOC와의 긴밀한 스킨십에서 미흡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IOC도 정치 논리가 지배하는 단체다. 레슬링계가 올림픽 정식종목 유지를 위해 발품을 팔고 홍보를 하며 IOC 관계자들과 친분을 꾸준히 다졌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체육계의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5월에 러시아에서 IOC 집행위원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레슬링계가 IOC에 결정 번복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한 숨을 쉬었다. 러시아는 대표적인 레슬링 강국이다. 마지막 0.1% 가능성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공식적으로 레슬링이 2020년 하계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된 건 아니다.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 최종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건에만 상정된 것. 그러나 레슬링계의 바람과는 달리 IOC 집행위원회에서 결정된 방침이 총회에서 뒤집힌 전례는 없다. 99.9% 퇴출이 확정됐다고 보면 된다. 대한레슬링협회도 이런 현실을 알기 때문에 초상집이 된 것이다.
▲ 선수수급, 각종지원, 메달획득전선 모두 빨간불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퇴출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이 관계자는 “선수 수급이 가장 큰 문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올림픽에 나가지도 못하는데 누가 레슬링을 하겠는가”라고 안타까워했다. 올림픽에서 레슬링이 없어지면 레슬링 저변이 더 허약해질 가능성이 자명하다. 올림픽종목과 비올림픽 종목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보면 된다.
2016년 리우올림픽 이후엔 대한체육회의 보조금 지원 축소, 태릉선수촌 사용 날짜 축소 등 추가 조치가 일어날 전망이다. 기업들의 스폰서 지원도 끊기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올림픽에 못 나가면 그 자체로 홍보 효과가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 레슬링은 런던올림픽에서 김현우(삼성생명)가 그레코로만형 금메달을 따내는 등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11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3개를 따내며 효자종목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한국의 역대 첫 하계올림픽 금메달도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양정모가 레슬링에서 따내는 등 한국 스포츠 역사를 논할 때도 의미가 크다. 레슬링의 퇴출로 올림픽 메달 획득 전선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대한레슬링연맹은 현재 세계레슬링협회의 후속 조치만 기다리고 있다. 현 시점에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앞날이 캄캄하다. 망연자실한 레슬링계다.
[김현우 경기장면(위),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던 김현우(아래), 사진 = gettyimageskorea/멀티비츠,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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