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대만의 한 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이 "우린 반바지를 입고 싶다"면서 아침조회 시간에 집단 시위를 벌인다. 시위를 주동한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가 학교에 불려오지만 학생기록부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매의 오빠로 적혀있다. 쌍둥이 자매는 아버지라고 주장하고 오빠라고 기록된 남자도 딸들이라고 우긴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아버지가 아니라 오빠로 적혀있을까?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인 리암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양야체 감독의 '여친남친'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말할 수 없는 비밀'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궤를 같이하는 대만산 청춘영화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청순한 여고생의 이미지로 관객들을 울렸던 계륜미가 출연한 '여친남친'은 대만의 민주화 과정을 배경으로 대만 남부 가오슝 근처에서 자란 여친인 메이바오(계륜미)와 남친인 리암(장효전)과 아론(봉소악),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영화이다.
대만은 국민당 정부의 군사 독재가 1949년에 선포한 계엄령으로 40년 동안 탄압정치로 이어졌다. 1987년 7월 계엄령이 해제되고 1989년 1월 복수정당제가 도입되어 대만은 국민당 1당체제를 벗어났으며, 2000년 대선에서 민진당의 천수이볜이 총통에 당선됨으로써 국민당 집권정치에 마침표를 찍었다.
계엄령이 해제되기 전인 1985년 여름, 대만 남부 카오슝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작되는 리암의 회상은 독재정권 밑에서 해방과 자유를 동경하는 메이바오와 리암, 그리고 아론의 발랄한 고교시절을 각인시켜준다.
서로가 떨어질 수 없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지만 메이바오는 리암을 사랑하고 아론은 메이바오를 사랑한다. 더욱이 리암은 메이바오를 진정한 친구로서 좋아하지만 동성친구인 아론을 사랑하기 때문에 메이바오를 이성친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메이바오는 차선책으로 아론을 이성친구로 받아들인다.
엇갈린 사랑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초반부와 '여친남친'이라는 제목만 보면 전형적인 학원 로맨스물이 연상되지만 이 영화는 세 친구의 삼각관계보다는 독재가 팽배한 학교분위기와 그에 대항하는 학생들의 시위로 대만의 시대상을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세 친구의 엇나간 감정과 그로인한 상처와 아픔을 아련한 추억으로 각인시킨다.
1990년 봄, 타이페이, 최대 규모의 학생 시위와 집회 장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친구의 대학시절은 대만의 시대상과 함께 성정체성으로 갈등하는 리암과 그런 리암을 지켜보는 메이바이와 아론의 사랑과 우정을 부각시킨다.
1997년 가을, 타이페이, 게이 친구인 사이몬의 동성 결혼식을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된 메이바이와 리암, 그리고 아론. 성인이 된 그들의 엇갈린 감정은 계속해서 서로를 향해 이어지지만 역사가 주는 아픔만큼 그들 역시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무상함에 엇갈린 삶을 감내하게 된다.
1985년 여름부터 2012년 여름까지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을 보여주는 '여친남친'은 대만의 시대상과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금기에 대한 적대감을 자연스럽게 녹인 시나리오가 우선적으로 탄탄하다. 또한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 배우들의 앙상블로 젊은이들의 정서를 부각시킨 양야체 감독의 연출이 뛰어나다. 특히 이 영화는 생기발랄한 대사들보다도 대사 없이 표정과 행동으로 보여지는 감성적인 장면들이 큰 감동을 준다.
수영장에서 리암이 메이바오의 손에 아론을 쓰고 메이바오는 리암의 손에 자신의 이름인 메이바오를 쓰는 장면과 리암이 메이바오가 남긴 백지 편지를 보는 장면은 "할말이 너무나도 많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표현한다"라는 연출의도가 섬세하게 드러난 장면이다.
리암이 메이바오의 손에 아론을 쓴 것은 아론에 대한 괴로운 짝사랑으로 아론을 떠나겠다는 리암의 의지이고, 메이바오가 리암의 손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그 손을 리암의 가슴에 가져가는 메이바오의 행동은 자신의 사랑을 가슴깊이 간직 하라는 그녀의 바람이다.
또한 리암에게 할 말이 너무 많은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메이바오의 백지 편지 장면은 고교시절 마지막 장면에선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보는 리암을 각인시키지만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라스트 씬에 보여지는 것은 그 백지 편지를 보고 울음을 터트리는 리암의 모습이다. 그것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메이바오의 안타까운 심정에 대한 미안감과 아론을 짝사랑하는 리암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슬픔이다.
성정체성으로 갈등하는 리암 역을 호연한 장효전은 타이페이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금마장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계륜미는 고교시절, 대학시절, 그리고 성인이 된 메이바오의 성장기를 인상 깊게 보여준다.
스쿠터를 타고 오솔길을 달리는 세 사람의 너무나도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절 뒤에 인생무상을 느끼게 해 주는 이 영화는 아련한 추억 속에 애잔한 감동을 주는 두근두근 시네마로 놓치기 아까운 대만산 청춘영화이다.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영화 '여친남친' 스틸컷. 사진 = 찬란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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