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김응용 감독에겐 답답한 개막 2연전이었다.
한화의 개막 2연전서 롯데에 2경기 연속 9회 끝내기 패배를 맛봤다. 2연전을 통해 한화의 아킬레스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개막전서는 4-0으로 앞섰으나 6회 연이어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며 동점을 허용했고, 다시 리드 점수를 뽑았으나 마무리 안승민이 불을 질러 5-6 역전패를 당했다. 두번째 경기서도 불펜 송창식이 역전 점수를 내줬다. 선발 대니 바티스타, 데나 이브랜드 그리고 타선은 그럭저럭 제 몫을 했으나 지키는 야구, 수비가 역시 약점이었다.
한화는 지난해에도 불펜과 수비가 불안했다.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다. 근본적 원인을 살펴보면 한화 구단의 체계적이지 못했던 선수단 관리, 세대교체 실패 등을 꼽을 수 있다. 지난 시즌 후 구단은 김응용 감독을 모셔와 팀 체질개선을 해주길 바랐다. 김 감독 특유의 승부사 기질과 카리스마로 한화를 환골탈태 시켜주길 원했다.
▲ 감독 김응용, 승부사 기질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김응용(72) 감독은 1972년 한일은행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1983년 해태 지휘봉을 잡아 2000년까지 18년간 9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선동열, 김성한, 이순철, 한대화, 김종모, 장채근, 이종범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을 하나로 묶는 철두철미한 원칙과 강력한 카리스마가 명장이란 소리를 들었던 원동력이었다. 심드렁하게 의자에 앉아있다가도 발 빠른 판단과 뚝심으로 승부처를 휘어잡았다. 필요하다 싶을 땐 덕아웃 의자를 부수면서 팀 기강을 잡았다. 심판들과의 신경전도 서슴지 않았다. 퇴장을 당해서라도 팀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면 심판들에게 배라도 부딪쳤다.
김 감독은 2001년 삼성으로 옮긴 뒤 삼성에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숙원을 풀어줬다. 이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삼성 사장으로 재임하며 사실상 현장을 떠났다. 2011년과 2012년엔 야인생활을 하다 지난해 말 한화 사령탑으로 전격 컴백했다. 9년만의 현장 복귀다. 예전의 승부사 감각이 떨어지진 않았을까. 김성한 수석코치는 “감독님은 감독님이다. 여전하시다”라며 세간의 우려를 일축했다.
김 감독은 한화 부임 후 젊은 선수 키우기에 나섰다. 고졸 신인 한승택을 개막엔트리에 넣었고, 임기영을 불펜에 중용하기 시작했다. 나태한 기질을 보인 30대 베테랑들에겐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정상급 베테랑 타자 장성호도 김태완의 컴백으로 포지션 중복이 되자 과감하게 롯데로 보냈다. 투수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 구단에 대전구장 외야 펜스 길이 확장을 주문하기도 했다.
▲ 한화는 해태, 삼성과 다르다
한화는 시범경기 종반 3연승으로 반짝 돌풍을 일으켰지만 약점을 하루아침에 보완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화의 전력 누수는 예전부터 이어져온 작은 문제들이 곪아 터진 것이었다. 상처를 치료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이 빠르게 불펜 운용을 하고 싶어도, 수비를 강화시키고 싶어도 갖고 있는 재료가 해태, 삼성 시절과는 차원이 달랐다.
김 감독이 데리고 있었던 과거 해태, 삼성 선수들은 리그 정상급 기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김 감독은 지켜보다가 컨트롤 하면 됐다. 한화 선수들은 당시 해태, 삼성에 비해 개인 기량이 다소 떨어진다.
작금의 한화는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김 감독도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질 수 있다. 1~2군 선수단 교체, 상식을 뛰어넘는 기용, 김 감독의 직접적인 선수단 미팅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중요한 건 어느 타이밍에, 어떤 방식으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서 선수들의 몸과 마음을 바꿔 놓느냐다.
김 감독도 개막 2연전을 통해 분명 예전 해태, 삼성 시절처럼 한화 선수들을 끌고 가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한화에 맞는 김 감독의 승부수가 있을까. 있다면 실체는 무엇일까. 답안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간이 걸릴 문제다.
[김응용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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