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올 상반기 극장가는 '의리' 있는 행동들이 모여 나름대로(?) 결실을 맺었다.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의리'라는 키워드로 뭉친 이들은 바로 이 '의리' 때문에 울고 웃었다.
지난 3월 충무로는 평점 테러로 들끓었다. 특정 사이트에서 시작된 평점 테러는 다수의 영화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일부 네티즌들이 평점테러를 특별한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자행, 10점 만점의 중 단 1점 만을 주며 전체 평점을 깎아 먹었다. 실레로 당시 9.46점을 받았던 '연애의 온도'의 경우 테러 후 평점이 3.87점으로 급 하락했다.
물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의리'라는 단어로 대표될 수 있는 배우 김보성이 찍은 영화 '영웅:샐러멘더의 비밀'이 개봉됐고, 장난기가 발동한 네티즌들이 포털사이트의 각 영화 게시판을 찾아다니며 1점과 함께 '의리', '으리' 등이 들어간 부정적 코멘트를 남겼다.
당시 영화 관계자들은 "예비 관객들이 영화의 입소문을 가늠하고 관람 작품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점에서 이러한 의도적 평점 깎아 내리기는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들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행위", "관객들에게 타당하지 않은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영화들에 명백한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장난에서 비롯된 평점테러는 부가판권서비스까지 영향을 미쳤다. 주로 개봉 작품에 이뤄지던 평점 테러가 스크린에서 내린 영화에까지 이어진 것. 이에 영화인들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한국 영화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당시 테러의 대상이 된 영화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을 정도로 도드라졌던 평점 테러는 일부 네티즌에게 의리 있는 행동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배우 김보성 그리고 다른 영화 관계자들도 의리 없는 행동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비뚤어진 의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상반기 영화계는 의리 덕분에 긍정적 선례를 남기게 됐다. 고질적으로 지적됐던 등급 논란에 맞서 이례적 결과를 낸 것.
신수원 감독의 '명왕성'은 당초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주제, 내용, 대사, 영상 표현이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이지만 일부장면에서 폭력적인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모방위험의 우려가 있는 장면 묘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결과는 영화계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명왕성'은 사립 고등학교에 존재하는 상위 1% 비밀 스터디 그룹에 가입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평범한 소년이 괴물이 돼가는 과정을 그리며 현 입시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 메가폰을 잡은 신수원 감독의 경우 스스로도 청소년들이 관람해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위 조절에 신경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명왕성'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됐을 때도 제너레이션 14플러스(14세 이상 관람가) 부문에 이름을 올렸고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해외의 경우 청소년이 관람 가능한 영화였을 뿐 아니라 제너레이션 부문에서 상까지 거머쥐었지만, 국내에서 청소년이 관람할 수 없는 영화로 평가받자 영화인들이 발 벗고 나섰다. '명왕성'의 제작사는 영등위를 직접 찾아가 심의위원 앞에서 입장발표를 했다. 소명서도 잊지 않았다. '명왕성'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경우 영화인의 의리를 지켰다. 성명서를 통해 폭력적 장면이 있음에도 청소년 관람가로 분류된 외화와 '명왕성'을 비교하며 "이들 영화의 등급이 다른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의리'가 빛을 발했는지 '명왕성'은 문제되는 장면을 편집한 재심의가 아닌 원본 그대로 등급 재검토를 요청하는 재분류를 통해 이례적으로 등급이 다운, 15세 이상 관람가를 확정지었다.
이런 의리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등위로부터 '뫼비우스'가 사실상 상영이 불가능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후 한국영화감독조합 등은 등급 철폐를 위해 한 목소리를 냈다. 비록 개봉을 위해 김기덕 감독 스스로가 문제가 되는 장면을 삭제한 후 재심의를 받기로 결정했지만 영화인들의 목소리는 이들의 힘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영화 '영웅:샐러멘더의 비밀' 포스터와 '명왕성' 포스터. 사진 = 익스트림필름, 싸이더스FNH, SH필름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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