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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전형진 기자]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극본 박경수 연출 조남국)은 불친절한 드라마다.
신도시개발, IMF, 구조조정 등 1990년대 국민 경제를 뒤흔들었던 주요 사건들을 다룬 이 드라마에는 보통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멜로나 권선징악의 교훈적인 이야기는 없다. 대신 주식과 유상증자, 금치산자 등 낯선 경제, 법률 용어들과 대기업을 둘러싼 인물들의 암투극이 있다.
드라마의 흐름도 굉장히 빠르다. 1990년대부터 약 20년 동안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24부작 안에서 다루다 보니 어떤 시기에서는 오랫동안 멈춰 있지만 또 어떤 시기는 3~4년을 빠르게 건너뛰어 버린다. 그리고 이런 시간의 흐름을 설명하는 것은 대부분 그 시대의 일어났던 커다란 사건들을 짧게 보여주는 것으로 대체된다.
캐릭터의 대사 역시 불친절하다. ‘황금의 제국’ 속 캐릭터들은 직설적으로 말하는 법이 거의 없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담이나 고사 등을 인용해 말하길 좋아한다. 사도세자나 모택동, 팽덕회, 에바브라운 같은 역사 속 인물들은 종종 캐릭터들의 입을 통해 등장하고 이들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데 사용된다.
때문에 이 드라마는 매회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우며 일정 수준의 부동산, 경제 관련 지식이나 상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드라마다. 하지만 ‘황금의 제국’은 이 모든 불친절함에도 불구하고 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몇 가지 이유들을 갖고 있다.
‘황금의 제국’은 성진그룹을 차지하려는 야망을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주체로 한다. 여기에는 가난하지만 선한 자와 부유하지만 악한 자 사이의 권선징악 같은 따뜻한 교훈은 없다. 대신 누가 어떻게 더 많이 가질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 존재한다.
이들은 성진그룹이라는 황금의 제국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서로 전략적 파트너가 되기도, 한 순간에 서로 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최민재(손현주)는 장태주(고수)의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고 장태주는 최민재의 아내를 죽게 만들었지만 둘은 최서윤(이요원)을 무너뜨리기 위해 손을 잡는다. 그나마 정의와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최서윤 역시 사실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 최동성(박근형) 회장 곁에서 필요하다면 친형제들의 재산을 모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냉정하다.
이들 세 인물을 비롯해 드라마 속 주변 인물들도 모두 돈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황금의 제국’에는 없는 자와 가진 자의 대결 구도, 그곳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철저히 돈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들이 서로를 속고 속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서늘한 반전이 주는 긴장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장태주는 “돈을 벌고 싶으면 땀을 흘리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땀을 훔쳐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대사는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가지지 못한 자들은 계속 착취당할 수 밖에 없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그대로 보여준다. 착하게 살았다고 인정받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더 많이 가졌을 때 인정받는 자본주의라는 더럽고도 잔인한 현실을 이 드라마는 꼬집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황금의 제국’은 불친절한 전개에도 관심을 가지고 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드라마다. 제국을 향한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들의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더불어 그 안에서 현대 사회가 갖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하는 문제작이기 때문이다.
[‘황금의 제국’ 포스터와 극중 모습들. 사진 = SBS 제공, 방송화면 캡처]
전형진 기자 hjje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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