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그땐 선수들의 박탈감이 심했죠.”
KBL 대회요강 제41조에는 ‘공식 경기에 천재지변, 정전, 화재 등 불가항력에 의해 경기 개최가 불가능하거나 중지되었을 경우에는 총재의 결정에 따라 재개최 및 재경기를 실시한다' 라고 나와있다. KBL이 20일 SK-오리온스전서 나온 두 차례 판정을 오심으로 인정했으나 오리온스의 재경기 요구를 거부한 이유다.
역사상 KBL 대회요강 제41조에 의거해 재경기를 치른 사례는 없다. 그러나 재경기 결정이 된 사례는 딱 한 차례 있었다. 2003년 4월 11일에 열렸던 대구 오리온스와 원주 TG삼보의 2002-2003시즌 챔피언결정 5차전이었다. 이른바 ‘15초 사건’. 4쿼터 종료 1분16초 전부터 약 15초간 원주치악체육관의 계시기가 멈췄다. 그러나 심판, 경기진행요원 모두 모른 채 그대로 경기가 진행됐다. 끌려 다니던 TG삼보는 경기 막판 동점을 만든 뒤 3차 연장접전 끝에 승리를 따냈고, 여세를 몰아 대구에서 열렸던 6차전마저 가져가면서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KBL의 결정적 실수로 챔피언결정전 흐름 자체가 뒤바뀌었다. 당시 오리온스 사령탑이 LG 김진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지난 23일 오리온스와의 고양 원정경기를 앞두고 10년 전 회상에 젖었다. 그 회상은 곧 농구계 전체를 향한 당부로 이어졌다.
▲ 결정적 오심, 선수들 박탈감 심하다
김 감독은 “당시 선수들의 박탈감과 허탈감이 말할 수 없이 심했는데 KBL이 재경기를 선언했다. 이미 선수단은 대구로 내려온 상태였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정규시즌 우승팀 오리온스는 3~5차전을 원주 원정경기로 치르고 6차전 홈 게임을 위해 대구로 이동한 상황. 그러나 김 감독은 “TG삼보 쪽에서 재경기를 하려면 6차전을 하지 말고 다시 5차전부터 하자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미 양팀 선수들은 대구로 내려온 상황. KBL과 오리온스, 동부 관계자들은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결국 오리온스가 결단을 내렸다. 김 감독은 “당시 정태호 단장이 6차전을 앞두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재경기를 대승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이지 말자고 했다”라고 회상했다. 김 감독은 “당시 정 단장님이 나를 찾아와서 울면서 ‘내가 힘이 없다. 미안하다’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라고 했다.
당시 정 단장은 눈물의 기자회견으로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언론과 팬들은 오리온스를 ‘아름다운 패자’라고 했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였다. 오리온스는 이미 사기가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TG삼보는 대구에서 열린 6차전서 승리하면서 당시 정규시즌 3위팀 최초로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김 감독은 “그 사건으로 챔프전 결과가 뒤바뀐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나중에 재경기를 받아들일 걸 하는 후회도 했다”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김 감독은 “재경기를 받아들였다면 그것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재경기를 안 하고 넘어가서 사태를 잘 마무리 했다”라고 털어놨다. 재 경기 개최 시기 및 장소를 잡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고 사기가 떨어진 상황에서 재경기를 한다고 해도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다.
▲ 헐리우드 액션+보상판정 사라져야 한다
김 감독은 “심판들도 헷갈릴 것”이라고 했다. 20일 SK-오리온스전서 논란이 된 오리온스 김동욱의 속공파울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김 감독은 “NBA는 코트를 가상으로 세분화 해서 어느 지역에 선수가 있고, 없는 것에 따라 속공파울 여부가 결정된다. 굉장히 복잡하다. 심판도 일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능력이다”라고 했다.
김 감독은 KBL이 룰을 손질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몸 싸움. FIBA(국제농구연맹)룰의 경우 위크 사이드(공 없는 반대쪽 지역)에선 어지간한 몸싸움으로는 파울 콜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KBL은 즉각 파울이 불린다.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한 조치다. 김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KBL룰에 적응이 돼서 국제대회에 나가면 적응을 하지 못한다. KBL이 손질해야 한다”라고 했다. 실제 이 부분을 놓고 국내 심판들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역시 또 미묘하게 다르다. 대체로 포스트시즌서 파울 콜이 더 자주 나온다.
김 감독은 보상 판정에 대해서도 짚었다. “절대로 안 된다. 악순환이다. 심판들이 감독들의 항의에 좌지우지 돼선 안 된다. 경기 자체가 완전히 엉망이 된다”라고 했다. 심판들의 콜에 벤치에서 강력하게 항의하면 테크니컬 파울을 받더라도 다음에 유리한 판정을 받는 케이스가 종종 있었던 게 사실이다. 김 감독은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라면 항의를 많이 하지 않는 사령탑이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도 당부했다. “요즘엔 많이 줄어들었지만, 헐리우드 액션도 절대로 하면 안 된다. NBA에선 명백한 파울이 나와도 수비자가 과도한 액션을 취하면 테크니컬 파울을 준다.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사라져야 한다. 내가 농구를 할 땐 절대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라면서 일부 선수들의 나쁜 버릇이 국제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KBL에서 안 좋은 습관이 익숙해진 일부 선수들이 국제대회서 어설픈 시뮬레이션 액션을 취하는 바람에 낭패를 본 적도 있었다.
김 감독은 “심판도 성향이 있다. 트레블링을 잘 부는 심판, 공격자 파울을 잘 부는 심판이 있다. 그걸 잘 활용하는 선수가 영리한 선수다”라고 했다. 심판이 투명하고 공정한 판정을 내리고, 선수가 그에 맞게 플레이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출범 16년이 지난 프로농구는 아직도 그게 제대로 되지 않는다. 김 감독의 10년 전 회상과 당부. 모든 농구인이 생각해 볼 문제다.
[김진 감독(위, 가운데), 20일 오리온스 선수들 항의 장면(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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