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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전형진 기자] 사계절 내내 똑같은 패딩코트에 똑같은 가방을 들고 다니며 절대 웃지 않는 로봇 같은 여자.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의 박복녀 역을 최지우가 맡았다고 했을 때 쉽사리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멜로의 여왕’으로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지우히메’로 불리며 한일 양국에서 스타로 군림했던 여자. 그런 그가 갑자기 절대 웃지 않는 미스터리한 가사도우미를 연기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지금 그에 대한 평가들은 새롭게 내려졌다. 청순가련을 벗고 미스터리한 여자로 색다른 연기 변신을 이뤄낸 배우 최지우를 최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번 작품은 최지우에 대한 재발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박복녀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KBS 2TV 드라마 ‘직장의 신’의 김혜수나 MBC 드라마 ‘여왕의 교실’의 고현정처럼 강한 카리스마로 단박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을지라도 박복녀라는 인물에 잘 어울리는 연기를 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그의 얼굴은 무표정하고 어딘지 오싹한 느낌까지 주는 박복녀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졌고 감정연기를 할 때마다 지적되곤 했던 그의 부정확한 발음은 감정 없이 대사를 뱉어내는 박복녀 캐릭터를 만나자 오히려 정확하게 들렸다. 본인 스스로도 이번 연기에 대해 “스스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며 만족해했다.
“제가 새로운 캐릭터로 변한 것 같아요. 처음 작품을 시작할 땐 우려도 많았고 비교도 많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뭔가 하나를 해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성취감 같은 거죠. 그런 점에서 저는 제 스스로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어요. 그 외 기본적인 연기력이나 스킬에 관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웃음)”
초반에 최지우는 원작인 ‘가정부 미타’와의 비교에 시달렸다. 패딩과 모자, 마호가니 시계까지 원작의 인물이 갖고 있던 스타일을 복녀가 그대로 가져온데다 일본 대사가 그대로 번역된 것 같은 어색한 말투는 극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수상한 가정부’는 후반부로 갈수록 원작과 다른 이야기들이 등장하면서 원작의 그늘에서도 점차 벗어났다.
“우리 작품을 원작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는 없지만 다르다고는 생각하고 싶어요. 원작을 뛰어넘었다고 말하기 보단 재탄생된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촬영을 할 때도 ‘가정부 미타’랑 비슷하게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은 하지 않았거든요. 물론 작은 소품들 같은 경우는 바꾸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원작자가 그 캐릭터의 그런 부분을 지켜주길 바랬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죠.”
최지우는 이번 작품에서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호흡했다. 아역배우 김소현, 채상우, 남다른, 강지우로 이뤄진 결이네 사남매는 극중에서뿐만 아니라 평소 촬영현장에서도 최지우를 ‘복녀님’이라고 부르며 많이 따랐다. 아이들이 많아 촬영장도 시끌벅적할 줄 알았더니 바쁜 촬영 탓에 다들 피곤해할 때가 많았다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장난도 치며 촬영장 분위기를 주도한 것은 최지우와 이성재였다.
“어른이라고 해봤자 저랑 (이)성재 오빠 밖에 없잖아요. 아이들도 힘들어하는데 어른들까지 처져있으면 촬영장 분위기가 안 좋아 질까봐 오히려 저희가 더 힘내고 그랬어요. 애들한테 장난도 치고. 애들이 참 어른스럽고 예쁜 게 현장에서도 저를 ‘복녀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김)소현이, (채)상우, (남)다름이, (강)지우 덕분에 많이 웃었어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많은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사랑스런 아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이니만큼 가끔 극중에서 아이들을 엄하게 대하는 복녀가 때로는 이해가 안 됐던 부분도 있었다고 한다. 극중 세결(남다름)의 멱살을 잡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한결(김소현), 두결(채상우)을 막아서는 장면은 연기하는 최지우 본인도 스스로 이해가 잘 안될 만큼 극단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런 복녀의 행동을 캐릭터 그 자체로 인정하기 시작하니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고.
“복녀는 왜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저도 어떤 장면에서는 ‘이런 건 좀 바꿀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런 복녀의 행동 자체가 캐릭터더라고요. 그걸 순화시켰다면 복녀만의 캐릭터가 안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복녀는 처음에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만 마지막에 가면 똑똑해서 무릎을 치게 만들잖아요. 그 때문에 다음 회가 더 궁금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이번 작품은 최지우에게 배우로서 많은 것들을 남겨준 작품이었다. 작품을 하는 내내 ‘침대에 누워서 3시간 자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된 현장이었지만 그 덕분에 더욱 남는 게 많았다는 것. 마지막 장면을 끝내고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울기까지 한 것은 그동안의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있던 탓이었다.
“처음 드라마를 할 때 ‘네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드라마를 굳이 왜 하려고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드라마 시작할 때 성재오빠가 그랬어요. 지금은 힘들지만 끝나면 잘 했다는 생각이 들 거니까 열심히 자부심을 갖고 하라고. (김)해숙 엄마도 제가 매일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고 하면 저한테 계속 잘하고 있다고 해주셨고요. 결과적으로는 그런 이야기들이 맞았던 것 같아요. 시청률 면에서는 아쉬운 건 있었지만 우리 드라마는 멜로도 없고 막장도 없고 따뜻한 가족 드라마로 남을 수 있었으니까. 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요.”
[배우 최지우.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전형진 기자 hjje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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