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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수요일 저녁이 기다려지는 건 7시 15분이면 MBC에선 '오로라 공주'를 하고 10시에는 SBS에서 '상속자들'이 하기 때문이다. 다른 평일에도 '오로라 공주'는 있으나 '상속자들'은 수요일과 목요일에만 있다. 주말에 하는 거였다면 설레는 기분이 좀 덜했을지 모르겠다. 현실에 허덕대며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봐야만 이 두 드라마의 쾌감이 더 선명하기 때문이다.
'오로라공주'와 '상속자들'은 비슷한 구석이 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둘 다 제법 재미있다. 작가들이 이야기를 참 맛깔스럽게 쓴다. 재미있게 보는 사람도 꽤 많아 '오로라 공주'는 이제 막 시청률 20%에 올랐고, '상속자들'은 이미 20%를 넘었다. 시청률이 5%도 안 되는 드라마가 허다한 요즘 아닌가.
임성한 작가가 쓰는 '오로라 공주'는 매일매일 이야기의 배치가 절묘하다. 로라(전소민)가 설희(서하준)를 버리고 마마(오창석)에게 시집가 시청자들을 분통 터지게 하더니 사실 설희는 혈액암 4기란다.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나 싶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로라가 마마와 이혼하고 암세포도 생명이란 마음씨 착한 설희에게 가서 치료 받자며 "결혼해요"라고 청혼한 뒤 끝내 재혼했다. 설희의 암은 낫게 될지, 마마는 또 로라와 결국에는 어떻게 될지 무척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로라, 마마, 설희 세 사람의 치정에다가 마마의 세 누나의 등쌀이라든가 방송국 PD의 연애사, 매일 절에서 1천배를 하고 이성애자가 되어 돌아온 전 동성애자 나타샤(송원근)의 사연 같은 것들이 연결고리처럼 배치돼 있어 30여분이 너무 짧게 느껴지니, 임 작가의 탁월한 호흡 조절에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임 작가와 김 작가의 이 재미난 두 드라마를 감히 비현실주의라고 일컫고 싶다. 현실에선 도통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이니 말이다. 단지 판타지라고 칭하기에는 우연의 남발은 기본이요, 개연성 떨어지는 감정의 변화는 무쌍할 지경이니 딱 비현실적이다. 현실을 향한 비판적 시각이 거세된 것 역시 두 드라마의 닮은 점이자 비현실주의라 부르기로 한 이유다.
그래서 '오로라 공주'를 보며 여옥(임예진)이 유체이탈 후 죽은 이유를 찾거나, 사임당(서우림)은 무슨 이유로 로라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는지, 떡대는 또 왜 죽게 되는 건지 의문을 갖는 건 사실 의미 없다. 물론 '상속자들'이 극 안에서 사배자란 명칭으로 학생들을 차별하는 장면을 반복해 내보내는 게 실제 우리네 학급 속 학생들에게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걱정하거나, 학교폭력이란 게 한 캐릭터의 묘사를 위한 단순한 도구로만 사용되어도 될 만큼 가벼운 소재인지, 사배자란 게 남들에게 기필코 감춰야만 하는 부끄러운 자격인 게 정말 맞는 건지 등을 따지고 고민하는 것 또한 모두 허무한 일일 뿐이다. 이 모든 의문 또는 지적을 고려한 드라마들이었다면 임 작가와 김 작가 모두 이렇게 이야기를 이끌어오지 않았을 테니까.
'오로라 공주'와 '상속자들'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생각 없이 보면 기막히게 재미있는, 생각하고 보면 정말 기가 막히는 드라마다.
목요일 아침이 기다려진다. 두 드라마의 시청률은 또 얼마나 오를까. 대중의 삶에 끼칠 영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고 현실과는 괴리된 채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소재만 가득한 드라마가 인기 있는 세상이다. 이런 드라마를 탓해야 할까, 이런 드라마가 재미있는 현실을 탓해야 할까.
[MBC 드라마 '오로라 공주'(위), SBS 드라마 '상속자들'. 사진 = MBC-SBS 방송 화면 캡처]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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