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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지영 기자] "제 이야기가 뭐가 재밌겠어요. 배우들 이야기가 재밌지."
매서운 한파주의보의 칼바람이 몰아치던 날 만난 케이블채널 tvN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 신원호 PD의 첫마디였다. '응사' 스태프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바로 다음 날, 밀린 인터뷰를 하던 신 PD는 결국 불만을 터트렸다. 배우들이야 드라마 종영 후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소회들을 털어놓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지만, 감독이 이 같은 인터뷰를 소화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니 신 감독의 불만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 PD의 애교섞인 불만에도 그를 인터뷰 해야 했던 이유는 '응사'가 9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혹은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도 아니면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2013년 겨울을 무척이나 설레게 만들었던 예외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에게 듣지 못할, 어쩌면 이번 기회가 아니면 놓치고 가버릴 '응사'의 또 다른 이야기를 신원호 PD에게 들어봤다.
# '응답하라'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응사'는 2012년 여름, 많은 시청자들과 tvN 고위 간부들, 타 방송국의 예능 PD들을 놀라게 만든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의 후속작이다. 97년도에서 94년도로 배경이 바뀌고,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캐릭터가 변경됐을 뿐 두 작품은 유사한 설정과 패턴을 뗬다. 특히 두 작품 속 여주인공인 성시원(정은지)과 성나정(고아라)의 가족이 그렇다. 성동일과 이일화를 부모로 둔 두 사람에게는 각자 언니와 오빠가 있었지만 사고와 지병으로 가족의 곁을 떠났다. 가족의 죽음, 신PD는 어째서 죽음의 이야기를 꺼냈을까.
"기본적으로 '응답하라 1994'와 '응답하라 1997'은 시간에 관한 드라마다. 94, 97년을 살았던 친구가 2013년에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다룬 드라마. 자세히 보면 시간은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는 죽는 것. 그래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시간을 다루면서 피할 수가 없겠더라."
"물론 극 중 한 사람이 멀쩡히 출연하던 중에 13년 현재에서 '그분 어떻게 되셨냐?'물으면 '돌아가셨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이게 훨씬 큰 충격이기도 했고. 그런데 멀쩡히 살았던 사람이 죽는다는 상황 자체가 너무 가슴이 아파서 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 드라마는 15년, 20년을 살아온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죽음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응칠'에서는 성송주(예원)를 사랑했던 윤태웅(송종호)의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면, '응사'에서는 성나정의 오빠를 떠나보낸 후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많은 이야기를 다루진 않았지만 "내는 세월 지나가믄 좀 둔해질 줄 알았다. 근데 나이를 먹을수록 보고 싶어 죽겠다"는 대사는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응칠'때는 분량적인 여유가 없어서 송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못했는데 사실 송주에 관한 것을 많이 끄집어내고 싶었다. 특히 아빠, 엄마의 애틋함 같은 것들을. 그래서 '응사'에서는 오빠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내용들이 좀 더 첨가됐다. 일부러 어둡거나 슬프게 만들려고 하진 않았음에도 그 내용은 늘 아련함이 남아있다."
그래서 신 PD에게는 죽음에 관한 에피소드가 다른 것보다 조금 더 애착이 간다고 했다. 크게 강조하지 않아도 보기만 해도 아련해진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고.
"러브라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 드라마 중 안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몇 개 있을 것이다. 죽음을 앞둔 성동일의 친구 이야기나 시한부 엄마를 둔 아이에게 이를 설명해 줘야 하는 쓰레기(정우)의 이야기 같은 것들. 그러나 나는 정말 좋아하는 에피소드다. 찍으면서도 더 공들여 찍었다. 정우도 그 에피소드를 좋아했는데 이 친구가 울면 안 된다고 했는데도 너무 울어서 편집을 섞어 써야 했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소소하게나마 우리 드라마에 종종 등장했다."
# '응답하라'는 '누가 누굴 좋아하는' 사랑이야기다
'응칠'에서는 성시원의 남편 찾기가, '응사'에서는 성나정의 남편 찾기가 이야기의 큰 뼈대를 이뤘다. 살아온 배경과 방식은 다르지만 '누가 누굴 좋아하는' 마음은 똑같이 애틋하고 아픈, 다양한 사랑이야기를 다룬 '응사'와 '응칠'에는 남들과 조금 다른 인물이 등장했다. '응칠'의 준희(호야)와 '응사'의 빙그레(바로). 결론은 달라지만 묘하게 비슷했던 두 사람에 대해 신 PD는 "애초에 노출 자체가 달랐다"라고 설명했다.
"'응칠'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윤제가 시원이를 좋아하고, 학찬이(은지원)가 유정이를 좋아하고, 시원이가 토니를 좋아하는 이야기. 준희는 이들의 사랑이야기 중에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인물이다. 우리는 준희의 사랑을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동성애가 아니라 준희가 윤제를 좋아하는 이야기로 다뤘다. 그래서 단 한 번도 동성애라는 단어를 꺼낸 적이 없다."
"반면 '응사'의 빙그레는 애초부터 19살, 20살의 성장통을 담당한 인물이었다. 빙그레는 대학이라는 목표 때문에 19살 때까지 방황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20살이 돼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다 명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20살이 됐지만 의사가 되고 싶은 건지 아닌지, 남자를 좋아하는지 여자를 좋아하는지 어떤 것도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청춘이 바로 빙그레였다. 빙그레의 방황은 내용은 달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꼈을 것이다. 끝이라고 알고 달렸는데 이제부터 시작인 상황. 그 시기를 좀 더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빙그레의 방황을 택했다."
'응칠'의 강한 여운 때문이었을까. 쓰레기에 대한 빙그레의 마음을 두고 드라마 초반부터 사람들은 '응칠'의 준희를 떠올렸다. 특히 '응사'에서 빨간 스포츠카를 탄 누군가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예고편으로 등장하자 많은 이슈를 낳았다. 빨간 스포츠카는 '응칠' 마지막 회, 준희가 타고 떠났던 빨간 스포츠카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우린 빙그레를 청춘의 성장통을 그릴 캐릭터로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시청자들은 준희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겠더라. 근데 그 부분이 재밌는 것이다. 우린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사람들이 엮고 상상하는 것이. 그래서 빨간 스포차카를 넣었다. 모든 혼란이 지나가고 새로운 사람이 온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즌1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혼란스러워 하더라. 마지막까지 빨간차의 주인공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도 시청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었다. 그 환상과 상상을 깨고 싶지 않아서. 준희가 윤제를 남자로서 좋아한건지 동료로 좋아한건진 모르겠지만 영원히 준희는 윤제를 좋아하는 걸로 남았으면 좋겠다."
결과적으로 빙그레는 방황을 끝내고 새로운 사랑을 찾았지만, 준희는 끝까지 어떤 결말도 보여주지 않은 채 시청자들의 상상에 맡겼다. 신PD는 준희에 대해 "내가 '응사'와 '응칠'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라고 꼽았다.
"호야를 보면 별 느낌이 없는데 준희를 보면 뭔가 아련하다. '응칠' 카메오 촬영을 할 때 오랜만에 호야를 봤을 땐 몰랐는데 카메라 앵글 안에 있는 호야는 보기만 해도 아련해지더라. 그냥 '아, 우리 준희 왔다'란 생각이 들면서 굉장히 반가웠다."
# '응답하라' 시즌3는 미지수
'응칠'과 '응사'가 연이어 성공하면서 '응답하라' 시즌3에 대해 방송가 안팎의 기대가 크다. 신 PD 역시 이를 모르진 않았지만 그는 시즌3에 대해 "우리도 모르겠다"라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지금은 쉬고 싶기도 한데 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예능보다 드라마를 원하지 않을까. 그래도 갑자기 예능에 마음이 가면 예능 한다고 우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하게 된다하더라도 '응답하라'를 전제로 회의를 하진 않을 것이다. '응사'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응칠'과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서 '응답하라' 시즌2가 됐지만 다음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회의를 해봐야 답이 나올 것 같다. '응답하라' 시즌3가 될지, 전혀 다른 드라마가 될지, 혹은 예능을 하게 될지는."
[신원호 PD. 사진 = CJ E&M 제공]
이지영 기자 jyou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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