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할리우드의 괴짜 배우 배리(존 터투로)와 영화를 촬영 중인 감독 마르게리타(마르게리타 부이)는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근심에 사로 잡히죠. 배리는 지긋지긋하게 말을 듣지 않고, 점점 비밀이 많아지는 사춘기 딸 리비아와는 소통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촬영 현장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전 남편과도 아직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영화에 출연 중인 전 애인 비토리오와의 관계 역시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어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원히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거죠. 오빠(난니 모레티)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데 반해, 그녀는 어머니와의 이별이 두렵습니다.
난니 모레티 감독의 ‘나의 어머니’는 감정이 분출되는 극적 갈등의 파고가 없습니다. 마르게리타가 배리에게 화를 내는 장면을 제외하면, 시종 담담하게 흘러갑니다.
마르게리타는 소통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감독으로서 현명하게 통제하고 지휘하지 못하죠. 스태프에게 짜증을 내고, 배우와는 신경전을 벌입니다. 타인과 융화를 이루지 못하고 자신 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다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런 여동생에게 오빠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틀에 박힌 스타일은 좀 버리고 한 가지라도 탈피해봐. 가끔씩은 내려놓고 마음 가는 대로 해.”
그렇습니다. 마르게리타는 ‘척력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아 주변 사람들을 밀어냅니다. 어머니의 병 문안을 갔을 때 리비아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얼마전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구나. 지금 심란할거야.”
마르게리타의 딸 리비아는 어머니 대신에 할머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죠. 마르게리타는 가족, 애인, 동료들과 가까워지지 못하고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정리해고의 위협 속에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강조하는 영화를 찍는 현장에서는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립니다.
“다들 내가 현실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어. 엄마, 도와줘!”
마르게리타의 어머니는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인력의 삶’을 유지합니다. 주변 사람을 끌어들입니다. 라틴어 교사로 정년퇴직한 그녀는 여전히 손녀딸에게 라틴어를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라틴어는 문법이 중요해.”
그렇습니다. 문법이 중요한 라틴어처럼, 우리네 삶도 기초가 중요합니다. 나 자신을 조금은 내려놓고, 타인을 존중해주는 삶의 자세는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밑거름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이 찾아와 이렇게 말하죠.
“말을 경청해주시고 늘 질문을 하시고 내가 중요한 사람처럼 느끼게 해주셨죠. 선생님에게 중요한 사람처럼요.”
“질투하실 얘기지만 우리에게 선생님은 엄마였어요. 인생을 가르쳐 주셨죠. 지식보다 많은 걸 배웠어요. 그렇게 우리 안에 남으셨죠.”
주인공의 어머니가 라틴어 교사라는 설정은 실제 난니 모레티 감독의 이야기입니다. 난니 모레티 감독의 어머니는 로마의 비스콘티 고등학교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쳤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제자들이 찾아와 어머니와의 추억을 들려줄 때마다 난니 모레티 감독은 인생의 중요한 것을 깨달습니다. 그것은 타인을 존중해주는 삶의 지혜입니다.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애도일기’를 썼습니다.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이 책을 읽다가 “고작 두 줄을 읽었는데 마치 심장에 칼을 꼽는 듯한 고통”을 느껴 책을 바로 덮었다고 고백했죠.
난니 모레티 감독이 읽다가 덮어버린 대목은 아마도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몹시 당황스러운, 그러나 조금 위안을 가져다주는 생각. 그녀가 나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 만일 그랬다면, 나는 아무런 글도 쓰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그녀를 돌본 지난 6개월 동안에는 정말 그녀가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내가 글을 써왔다는 사실을 나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나는 오직 그녀를 위해서만 존재했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에는 그녀가 그랬었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도록 그녀는 자신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p26.
[사진 제공 = 국외자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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