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배우 남보라(25)에겐 연기 인생에 뭔가 전환점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땐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였지만 본인 스스로는 뭔가를 잊고 산다는 느낌이 컸다.
배우의 꿈을 갖고 꾸준히 달려왔지만 조금씩 자신의 순수했던 때를 잊은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전환점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남보라는 자칫 힘들고 어려울 수 있는 연극 무대를 택했다. 연극 '택시 드리벌'(연출 손효원)을 통해 처음 연극에 도전한 그는 시험대가 될 수 있는 무대 위에서 잊었던 것들을 하나씩 찾고 있다.
남보라가 출연하는 연극 '택시 드리벌'은 영화감독 장진의 대표적인 작, 연출극으로 11년만에 김수로프로젝트 12탄으로 부활했다. 주인공 덕배가 자신의 직업인 '택시 드라이버'를 잘못 발음한 데서 붙은 이름으로 팍팍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 소시민의 군상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코미디 연극이다. 극중 남보라는 덕배의 비운의 첫사랑 화이 역을 맡았다.
남보라는 "연극을 정말 하고 싶었다. 공효진 선배님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하시는 것을 보면서 나도 진짜 하고싶었다. 때마침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됐다"고 운을 뗐다.
첫 연극이라는 것에 부담감도 컸다. 하지만 못 한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다. 무대에는 처음 서보는 것이기 때문에 욕 먹을 각오를 하고 더 열심히 했다. 자신이 잊었던 것들을 찾는 게 우선이지, 부담감에 힘들어할 틈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런거 있잖아요. 오히려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서 나를 혹독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느낌. 연기하는데 있어서 연극 도전은 정말 잘 한 결정 같아요. 뭔가를 모르고 '뭐지?' 생각하던 시기였어서 이런 시간이 제게 필요했어요. '내 인생에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뭘까?' 뭔가 잊어버린 느낌이었거든요. 어릴 때 만큼의 열정도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았어요. 그 땐 잘 모르고 순수하니까 깨끗한 시선으로 오로지 연기만 하려 했는데 사실 그게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런게 사라진 느낌이었죠."
연예계 생활을 하며 사람도 많이 만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처음 연기를 시작하던 때와 달라져 있었다. '어릴 때의 깨끗한 마음을 잃어버렸구나'라는 생각을 본인도 했을 정도. 사실 이런 것들을 자각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자각했음에도 다시 순수함을 되찾는 것은 더 힘들었다.
"뭔가 계산하게 되는 걸 덜어내고 싶었다"고 밝힌 남보라는 "드라마 끝나고 쉬면서 정말 깨끗하게 사는 법을 다시 익히자는 생각으로 여행도 많이 다니고 자연도 많이 봤다.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고 잘 믿었는데 좀 마음을 다치고 이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인간 관계에 대해서도 계산하게 되더라. 대본을 볼 때도 마찬가지. 하나 하나 다 계산하는 나를 발견하고 놀랐다"고 고백했다.
솔직했다. 오히려 계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연기에 대한 자신의 순수한 열정만을 어필하는 계산적인 모습이 아닌, 본인을 돌아보고 느낀점을 가감없이 드러낼 줄 아는 영리한 연기자였다. 연극을 시작하며 순수한 마음을 되찾았기에 가능한 고백이기도 했다.
"순수한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대본을 봐야 하는데 '아, 여기서는 한숨, 여기서는 버럭' 이렇게 호흡 하나 하나 계산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진짜로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니까 저한테는 딜레마였죠. 정화시키고 싶었지만 잘 모르겠더라고요. 익숙해져버린 제 모습이 싫었어요. 그래서 다시 '내가 진짜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생각했죠. 너무 쉬지 않고 계속 달려와서 그랬던 것 같아요."
남보라는 다시 순수한 마음을 되찾기 위해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과거 '인간극장'에서도 공개됐던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당시를 돌아봤다. '저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당시 자신의 모습은 지금의 자신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그 때처럼 깨끗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대본 보는 자세 만큼은 그 때로 다시 돌아가자는 마음가짐으로 뭔가에 다시 임하고 싶었다"며 "사실 그것조차도 계산하는 것 같아 싫어서 더 아무것도 안했다"고 털어놨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을 비워내던 남보라는 연극을 통해 빈 곳을 채울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연습장에 들어갔을 때도 고등학교 입시 시절이 확 떠올랐을 정도. 연습실에서 뭔가를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대감도 많았다.
"연습실 가는 게 너무 좋았어요. 많은 사람들과 같이 한 대본을 갖고 한 목표를 향해 다같이 가는 거잖아요. 그런 것도 너무 좋고 뭔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정말 행복했죠. 선배님들이 다 너무 좋으셨어요. 거의 가족 같은 분위기에요.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진짜 너무 잘 해주시고 잘 되길 바라주시니까 얻은 게 정말 많아요."
하지만 어려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순수함만을 찾자고 연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연기적으로도 발전해야 했다. 특히 처음 무대에 서는 것이기 때문에 달라져야 할 것들이 많았다.
남보라는 "연극은 NG가 나면 다시 촬영하는 드라마와는 다르다. 그런 게 오히려 나를 더 긴장할 수 있게 쪼여준 것 같다"며 "연극 전후로 나를 돌아보면 쉼표가 하나 있었고, 지금 또 다시 문장을 만들어 나가는 시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 발성에 많이 신경 썼어요. 아무리 감정이 좋아도 제 대사가 끝에 있는 사람한테까지 안 들리면 아무 소용 없잖아요. 김수로 선생님이 일단 전달하는 걸 제일 먼저 하라고 하셨어요. 무대 위에서 노하우를 하나씩 찾아갔죠. 이제 맛을 봤으니 더 욕심이 생겨요. 직접 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에요. 입시 때 진짜 이거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했는데 그게 지금 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 때 가졌던 힘으로 지금까지 달려 온 것처럼 이제 '택시 드리벌'에서 받은 힘을 갖고 앞으로 몇 년은 거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남보라는 다시 자신을 되찾았다. 스물일곱, 어느새 훌쩍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 남보라는 확실히 더 성숙해졌다.
"진짜 눈깜짝할새에 스물일곱이 됐어요. '뭐야, 나 스물일곱이야?' 했어요. 저는 이 나이가 안 올 줄 알았어요. 일곱이라는 숫자가 없었죠. 근데 일곱이야? 대박.(웃음) 이젠 서른이 금방 올 거라는 생각을 해요. 연기 시작한 게 스무살 때라고 하면 7년간 뭘 얻었고, 뭘 잃었는지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특히 올해 들어 더 그래요. 어떤 마음으로 서른을 맞이할까.. 저 자신은 변한 게 없다 해도 보는 시선은 또 다르잖아요. 그런 만큼 책임감을 갖고 더 저를 다지게 되는 것 같아요. 더 참고 한발 물러서며 양보할 수 있는 배우,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연극 '택시 드리벌'. 공연시간 110분. 오는 11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문의 클립서비스 1577-3363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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