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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 안녕하세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주자 후보님.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TV에 너무 자주 나와서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네요. 한국의 영화기자가 칼럼에서 편지 형식의 글을 쓰는 것이 의아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북한 핵실험 문제로 잠잠해지긴 했지만, 당신이 연일 쏟아내는 ‘인종주의’ 발언에 대해 한 말씀 드리고자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딱히 다른 형식이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당신은 단상에 올라 멕시코 불법이민자를 성폭행범에 비유하는가 하면, 모든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오도하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일삼았지요. 미국 언론도 대선 레이스에서 퇴출시켜야한다고 들끓고 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신은 귀 담아 듣지 않을 겁니다. ‘확증편향’에 걸려 있으니까요. 아시겠지만, 확증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신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붙잡아 모두 부러뜨리고 있죠. 한국속담으로 말하자면, 소귀에 경읽기입니다.
정치적 계산도 한몫 하고 있겠죠. 미국의 백인은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과거와 달리 힘들어졌죠. 그들은 우대받던 시절로 돌아가길 원하고, 당신은 그들의 불안감을 이용합니다. 멕시코인, 무슬림 등 소수자를 공격하면서요. 공화당 내에 뚜렷한 경쟁자가 없다는 것도 호재입니다. 비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펜을 든 것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인종과 인종주의 개념을 바로 잡고 싶기 때문입니다. 인종은 허구입니다. 실체가 없습니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는 수만은 중간단계가 있습니다. 생물학자들은 ‘유전적 경사’라고 부릅니다. 어디서부터 하얀 피부를 규정할 것이며, 어디까지 검은 피부가 아니라고 판단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의 피부색은 유전자가 발현되는 표현형질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알겠지만, 인종주의는 1930년대 독일 나치의 ‘유대인 청소’에 상응하는 표현으로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반유대주의의 기나긴 역사가 있지 않냐고 항변하겠지요. 그러나 반유대주의라는 용어 역시 1870년대 후반에 나왔습니다. 누가 유대인이냐, 아니냐도 여전히 논란입니다. <인종주의는 본성인가>(알리 라탄시 지음, 한겨레출판)는 아버지 쪽으로 유대계 혈통인 경우에는 나치 용어로 ‘미슐링게(Mischlinge)’라고 해서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2차 대전중 독일군 입대가 허용됐다고 지적합니다. 이렇듯, 인종은 실체가 없습니다. 저자의 주장대로 ‘이 허구적인 인종이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특정 집단에 특정 인종의 틀을 씌워 차별하는 것이 인종주의’입니다.
당신이 미 합중국이라고 부르는 아메리카 대륙은 인디언으로 불리는 원주민의 땅이었습니다. 백인이 셀 수 없이 많은 원주민을 학살했죠. 그 위에 세워진 나라가 미국입니다. 1790년 미국 의회는 ‘모든 자유로운 백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했죠. 비(非)백인과 여성은 당연히 배제됐습니다. 1883년 미국 대법원은 흑백분리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죠. 지금의 미국은 이러한 어두운 역사를 극복하고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여 다인종사회가 됐습니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이룩한 초강대국 미국인데, 이제와서 세계적으로 척결 대상으로 지목된 인종주의를 들고나와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연일 인종주의 발언을 쏟아내느라 시간이 없겠지만, 잠시 틈을 내서 극장으로 가세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8’과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타란티노 감독은 전작 ‘장고:분노의 추적자’에 이어 흑인을 가혹하게 다뤘던 비인간적인 백인의 만행을 폭로하고 조롱합니다. 그는 여전히 미국이 노예제를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이냐리투 감독 역시 ‘레버넌트’에서 인디언을 인간이 아니라 짐승으로 취급하는 백인을 다룹니다. 두 영화감독은 부끄러운 백인의 역사를 직시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공화당의 최종 후보가 될지, 그래서 민주당의 대선주자와 맞붙어 승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초강대국의 대선 후보로 나왔다면, 역사 앞에서 겸허해지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인종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역사에서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많은 학살이 자행됐고 자행되고 있는지 당신도 잘 알고 있겠죠. 다시 증오와 경멸과 대립의 역사로 회귀하지 마십시오. 거듭 말하지만, 인종은 없습니다. ‘인종주의’만 있을 뿐입니다.
[헤이트풀8, 레버넌트 스틸컷. 각 영화사 제공]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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