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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열심히 하다 보면 인정받을 것이다."
2014년 9월 17일.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가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렸다. 당시 허재 감독이 이끄는 KCC는 1라운드 4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었다. 마침 허 감독의 장남 허웅이 얼리엔트리로 신인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승현, 김준일, 정효근이 1~3순위로 오리온, 삼성, 전자랜드에 지명됐다. 4순위 지명을 위해 단상에 오른 허 감독에게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 농구대통령과 농구대통령 2세가 한솥밥을 먹는 역사적인 사건이 성사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허 감독은 김지후를 호명했다. 5순위 지명권을 가진 동부가 기다렸다는 듯 허웅을 데려갔다. 그렇게 허재-허웅 부자는 프로에서 지도자-선수로서 한 배를 타지 못했다. 당시 농구계에선 허 감독이 허웅을 뽑지 않은 걸 두고 주위 시선을 의식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벤치의 선수기용이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는 농구 특성상 허 감독으로서도 주변으로부터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들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허 감독은 2015년 2월 KCC에서 사퇴했다. 그렇게 허재-허웅, 허재-허훈 부자는 농구판에서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허 감독이 9일부터 18일까지 이란 테헤란에서 열리는 2016 FIBA 아시아챌린지컵에 출전하는 남자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 그리고 농구협회 강화위원회가 허웅과 허훈 형제를 대표팀에 발탁하면서 삼부자가 극적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한솥밥을 먹고 있다.
예상대로 농구 팬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두 아들이 대표선발에 특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팬들, 실력으로 당당히 뽑혔다는 팬들의 의견이 충돌했다. 특히 장남 허웅이 윌리엄존스컵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논란이 커진 측면이 있었다. 반면 차남 허훈의 경우 존스컵부터 남다른 패스센스를 앞세워 김선형과 함께 주축 가드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상대적으로 논란의 화살을 피해갔다. 한 관계자는 "아버지(허 감독)이야 상남자라 전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다만, 두 아들은 상대적으로 심적인 부담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 감독은 공사를 철저히 구분한다. 선수기용을 보면 의식적으로 아들들을 더 기용하거나 덜 기용하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허훈은 정통 포인트가드다. 김시래가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상황서 확실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1번 스타일에 가까운 가드가 많지 않은 상황서 허훈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그는 존스컵부터 튀니지와의 평가전까지 자신의 경쟁력을 충분히 뽐냈다. 누가 사령탑을 맡더라도 허훈은 대표팀에 중용될만한 가치가 있다. 괜히 "내년 신인드래프트 1순위 예약"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그의 패스센스는 다른 가드들보다 확실히 비교우위다. 허 감독은 그 장점을 활용할 뿐이다.
반면 허웅은 허훈보다 비중이 조금 낮다. 2번은 얼리오펜스에 강점이 있는 김선형이 주전이다. 조성민, 이정현도 2번으로 뛸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허웅은 소속팀 동부에서처럼 많은 출전시간을 잡지는 못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보여주려다 풀리지 않는 경기도 있었다. 그리고 주위의 비난이 이어지자 위축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한 관계자는 존스컵과 튀니지 1차 평가전을 보고 "웅이가 부담을 갖는 것 같다"라고 안타까워했다. 허웅 역시 수비와 외곽슛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대표팀서 확실한 장점을 어필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허웅이 튀니지와의 2차전서 3점슛 4개 포함 23점을 퍼부었다. 물론 승패가 갈린 경기 막판에 만들어진 점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허웅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터닝포인트를 삼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경기인 건 분명했다.
허 감독은 두 사람을 아들이 아닌 선수로서 냉정하게 기용한다. 선수들도 삼부자를 의식하지 않고 편견 없이 바라본다. 조성민은 "요즘 젊은 선수들은 적극적이다. 훈이와 휴대폰 게임을 같이 하고 있다. 웅이는 1차전서는 주눅이 들었는데 오늘(2차전) 자신감을 찾은 것 같아서 보기 좋다"라고 했다. 대표팀 내부에서 삼부자 관련 잡음은 없다. 최고참 조성민은 허웅-허훈 형제를 다른 후배들과 똑같이 대한다.
감독이 누구인지를 떠나서 선수가 부진하면 팬들에게 욕을 먹는 건 프로의 숙명이다. 더구나 허웅-허훈 형제는 농구를 시작할 때부터 '농구대통령의 아들'이란 엄격한 시선을 받아왔다. 이런 이치를 감안하면 허웅-허훈 형제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마음의 짐을 털어내고, 실력으로 어필하면 된다. 허훈도 "농구를 하면서 계속 그런 얘기(논란)가 있을 것이다. 열심히 하다 보면 인정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람직한 마인드다.
[허웅-허훈 형제.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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