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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제가 벌써 데뷔한 지 30년이 다 돼간다고요?"라고 기자의 질문에 화들짝 놀라 반문하는 차승원이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고등학교 때 모델로 데뷔해 시작한 게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요"라고 새삼 세월을 곱씹었다.
그렇다. 젊은층에겐 '삼시세끼' 속 일명 차줌마로 익숙한 차승원은 지난 1988년 모델에이전시 모델라인 18기 출신으로 연예계에 입문, 어느 덧 데뷔 3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중견 배우다. 특히 모델 출신 배우의 길을 개척한 인물. 지금과 달리 모델 출신 꼬리표가 부정적이던 당시 이 선입견을 뚫고 믿고 보는 배우로 우뚝 섰다.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귀신이 산다', '시티홀', '최고의 사랑' 등 장르·역할불문 다수의 작품에서 활약했다.
이렇게 20여 년 동안 연기의 맛에 푹 빠졌다. 하지만 여전히 연기에 대한 갈증을 드러냈다. 차승원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무언가에 미쳐 있는 기분이라는 게 어떤 건지 저도 찾고 있어요"라며 "이런 과정 중에 '고산자, 대동여지도'라는 작품을 만났습니다"고 말했다.
지도에 미친 김정호의 기분을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차승원 역시 이 못지않게 집념과 열정을 불태우는 배우다. 지난해 여름부터 약 9개월 동안 오롯이 김정호 캐릭터로 빙의해 있었다. 김정호의 뜻을 좇아 대한민국 팔도를 누볐다. 최남단 마라도부터 합천 황매산, 강원도 양양, 여수 여자만, 북한강, 최북단 백두산까지 발걸음을 남기며 열연을 펼쳤다.
차승원으로써는 역사적 실존 인물을 다룬다는 부담감과 더불어 사료도 많지 않아 더욱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득보다 실이 많다"면서 역사왜곡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김정호의 영웅적 면을 넘어 지도에 대한 철학과 인간적인 면모를 선보이기 위해 갓끈을 맸다. 이는 또 한 뼘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을 촬영할 때는 남이 무엇을 하든지 신경 쓰지 않고 연기했어요. 제 연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거죠. 하지만 김정호 선생님을 연기하면서 조금씩 바뀌었어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너무 계산된 연기, 완벽한 연기를 추구하기보다는 마음을 열어두고 내려놓고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에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흥행 성패를 떠나 인생작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차승원은 "다음 행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배우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고 전했다.
끝으로 차승원에게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사람냄새 풍기는 답변을 남겼다. 그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물음으로 바꿔 대답을 이어갔다. "요즘 잘살아 본 사람이 연기를 잘한다는 말이 자꾸만 뇌리에 스친다"며 배우 이전에 사람됨을 강조했다.
"그런 선배가 되고 싶어요. 제 생각을 주입해서 변질시키는 게 아닌, 나와 다름을 인정해주고 그 사람의 세계를 바라봐주는 인간형이요. 예전엔 남을 좋아할 때는 호의를 베푸는 게 전부라고만 알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거죠. 어떤 먼저 앞에 걸어간 30년 차의 사람으로서 굳이 그 길에 대해 얘기하기보다는 그냥 묵묵히 지켜봐 주는 거에요."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고산자, 대동여지도' 스틸]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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