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세상의 끝에 몰린 형제의 마지막 도발, 자본주의 병폐를 향한 회심의 일격, 그리고 은행강도를 잡으려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집념의 추격. ‘로스트 인 더스트’는 도발과 일격과 추격 사이를 흙먼지 휘날리며 가로지른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는 황량하고, 내리쬐는 햇빛은 뜨겁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서부 텍사스 버전으로 불릴만한 이 영화는 나락으로 떨어진 가난한 형제가 벌이는 완벽 범죄를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풍경을 거칠고 쓸쓸하게 담아낸다.
대를 이어 빚더미에 시달리던 형제 토비(크리스 파인)와 태너(벤 포스터)는 가족의 유일한 재산이자 어머니의 유산인 농장의 소유권마저 은행 차압 위기에 놓이게 되자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은행을 털기 시작한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토비, 동생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형 태너는 증거를 남기지 않으며 계획을 실현한다. 형제의 은행털이 패턴을 알아낸 베테랑 레인저스 해밀턴(제프 브리지스)는 동료 알베르토(길 버밍햄)와 함께 본능적 감각으로 찾아 나선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마약거래 현장에 놓여있던 돈다발을 우연히 주운 한 남자(조쉬 브롤린)의 도주와 살인마(하비에르 바르뎀)의 추격, 그리고 이들을 잡으려는 베테랑 보안관(토미 리 존스)의 근심어린 시선으로 베트남 전쟁 이후 가치관이 붕괴된 미국사회를 묘파했다.
‘로스트 인 더스트’ 역시 형제의 은행털이 행각을 통해 착취와 핍박의 미국 역사를 현 시점에서 리얼하게 조명한다.
인디언 학살을 바탕으로 나라를 세운 미국은 이제 은행의 횡포로 서민의 삶과 꿈을 앗아가고 있다. 이 영화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 인물이 각각 국가와 은행의 희생양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언제나 ‘부수적 피해’는 인종적, 경제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처한 인물에게 닥쳐온다.
데이빗 맥킨지 감독은 토비-태너, 해밀턴-알베르토를 병치시키는 전략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특히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긴장의 강도가 지속되는 여운을 남긴다. 영화의 원제 ‘헬 오어 하이워터(hell or high water.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를 떠올리면, 세상을 향한 형제의 적의가 얼마나 뿌리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보통의 추격영화가 빠른 화면 전개로 속도감을 높이는 반면, 이 영화는 너무 길지 않은 적당한 롱테이크로 느른 호흡을 유지한다. 노을이 지는 저녁 풍경을 배경으로 짓궂게 장난을 치고,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은 1970년대 영화의 시적 리얼리즘을 떠올리게 한다.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데뷔작 ‘대도적’(1974)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은행강도로 출연했던 제프 브리지스가 42년 후에 추격자로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운 관람포인트다. 흡사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뉘우치는 출연처럼 보인다. 실제 극중에서도 그는 자신의 어떤 행위에 대해 후회하는 인물이다. 냉정한 크리스 파인과 다혈질의 벤 포스터의 연기 조합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지옥에 떨어지든 거센 파도가 몰아치든(hell or high water), 형제는 먼지 속에 사라지지(lost in dust) 않고 제 갈길을 갈 것이다.
[사진 제공 = 메인타이틀픽처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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