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창원 김진성 기자] "따로 말 할 게 없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기본적으로 말이 많은 스타일이 아니다. 모든 야구 감독이 그렇지만, 김 감독은 의도적으로 선수들에게 말을 아낀다. 알고 보면 유머러스하지만, 선수들에겐 적절한 카리스마를 유지한다.
김 감독은 "내가 따로 말할 게 없다"라고 수 차례 말해왔다. 이번 한국시리즈 기간에도 "선수들에게 별 말 안 했다. 미팅도 한 번 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굳이 선수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도리어 마음에 짐이 될 수 있다는 게 김 감독 생각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4차전 선발 유희관은 우승 직후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웠다. 앞에서(1~3차전) 다(더스틴 니퍼트, 장원준, 마이클 보우덴) 너무 잘 던졌다"라고 웃었다. 김 감독은 경기 전 이미 유희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부담 갖지 말라고 해도 어디 그럴 상황인가. 알아서 해야지 뭘"이라고 넘기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김 감독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 때 선수단에 더욱 묵직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2년 전 부임 후 선수들에게 강조했던 건 딱 두 가지였다. 야구의 기본을 지키자고 했다. 그리고 자기 기분대로 야구를 하지 말자고 했다"라고 털어놨다. 두 가지 모두 아주 중요하다. 김 감독은 이 부분에서 어긋나는 선수는 철저히 배제했다. 선수들은 감독의 말 아닌 실질적 움직임 하나에 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김 감독은 주전들에겐 철저히 자율을 보장했다. "훈련 스케줄도 주장에게 짜라고 할 정도였다"라고 했다. 실제 선수들은 시즌 중 알아서 훈련량을 조율했고, 부족한 훈련을 소화했다. 자연스럽게 팀 케미스트리는 강해졌다.
탄탄한 다른 파트들에 비해 불펜은 골칫거리였다. 특히 단기전서는 절대적인 변수. 그러나 김 감독은 "걱정 하지 않았다"라고 잘라 말했다. 정확한 의미는 '걱정 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나'로 해석할 수 있다.
김 감독은 효율적으로 대처했다. 일단 판타스틱4에게 최대한 많은 이닝을 맡겼다. 그만 던지겠다는 보우덴을 8회까지 마운드에 올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시리즈서 더블마무리 이현승과 이용찬에게 메인 셋업맨과 마무리 역할을 모두 맡겼다. 이들은 4차전서는 무려 4이닝을 합작했다. 결국 상대적으로 구위와 제구가 불안한 나머지 중간계투요원 6인방을 쓰지 않고도 완벽한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대신 김 감독은 "우리 불펜 약하지 않다. 다만 보여주지 않을 뿐"이라고 위트 있게 받아치면서 해당 선수들의 기를 죽이지 않고 배려했다.
이런 김 감독의 리더십은 '침묵의 리더십'이다.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말 한 마디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팀을 잘 만들어놨고, 감독이 굳이 싫은 소리 하지 않아도 팀이 잘 돌아가도록 만들어놨다. 그러면서 딱 필요한 메시지만을 묵직하게 내놓았고, 그 힘으로 팀을 움직였다. 물론 김승영 사장, 김태룡 단장 이하 프런트의 헌신적인 지원도 있었다.
지금 두산은 굳이 김 감독이 터치하지 않아도 잘 굴러가는 조직이다. 선수들은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김 감독은 최소한의 개입으로 팀에 윤활유를 뿌리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 결과가 21년만의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통합우승, 한국시리즈 2연패다. 구단은 침묵하는 김 감독에게 일찌감치 3년 재계약을 선물했다. 이번 오프시즌에 구체적인 조건만 발표하면 된다.
[김태형 감독. 사진 = 창원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창원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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