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을 평가하고 재단하며 ‘하하하’ 웃는다. ‘자유의 언덕’을 걷고 있는 타인을 끌어내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고 윽박지른다. 우리는 과연 타인을 제대로 아는 것일까. 홍상수 감독의 18번째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나는 틀리고 당신은 맞다.
영수(김주혁)는 동네 형 중행(김의성)에게서 자신의 애인 민정(이유영)이 어떤 남자와 술집에서 난리를 피웠다는 소문을 전해 듣는다. 영수는 술을 조금만 마시기로 한 민정이 약속을 어겼다고 다그친다. 민정은 당분간 떨어져 지내자고 제안한다.
이별 후에 영수와 민정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영수는 민정을 애타게 찾아다니는 반면, 민정은 다른 두 남자(권해효, 유준상)를 만난다. 관객은 그녀가 민정인지, 아니면 그녀의 주장처럼 민정의 쌍둥이 동생인지 분간할 수 없다. 민정을 향한 영수의 사랑은 더욱 확실해져가는데, 영수의 집착을 벗어난 민정의 사랑은 더욱 불확실해져간다. 민정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해체시키며 ‘당신들’의 편견의 그늘에서 빠져 나온다.
홍상수 감독은 ‘시간의 홈’을 파놓고 관객을 미로에 빠뜨린다. 그가 설계한 미궁은 아리아드네의 실이 없다. 각자의 해석만이 존재하는 시공간이다. 이 영화에서 모든 것이 영수의 꿈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민정을 향한 환상인지, 아니면 실재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밝고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는 이 영화는 각자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인간의 오해와 편견을 하나 둘 씩 깨뜨린다. ‘나는 민정이 아니다’라는 민정의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은 마법을 부리며 영수와 두 남자의 삶을 교란한다. 영수는 민정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일으킨다. 민정에게 품었던 두 남자의 연정은 어느 순간 미끄러져 ‘하하하’ 웃음 속의 허공으로 사라진다.
‘당신’을 자기 마음대로 이리저리 규정하고 당위성을 부여한 사람들은 민정의 대사가 오래도록 생각날 것이다.
“저 아세요?”
[사진 제공 = 전원사]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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