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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2004년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을까. 완전히 시력을 잃은 2009년까지 매일 술을 마셨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은 술 밖에 없었다. 깨어 있을 수가 없었다. 잠을 자기 위해서라도 술에 의지했다. 참담했다.
“5년의 시간이 지나니까 큰 충격은 다 가시더라고요. 받아 들였죠. 다시 좀 살자고 생각했어요. 제가 ‘시소’ 홍보 엽서에 쓴 글귀가 있어요. 행복은 불행을 똑바로 보고 받아들이는 용기가 주는 선물이예요.”
시력을 잃으니 청각이 예민해졌다. 바람이 불면 어디서 발원해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저절로 알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이 옷, 차, 아파트, 명품 등 눈에 보이는 것으로 상대를 판단한다. 현혹되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현혹되지 않는다. 심플하게 그 사람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법적으로 시각 장애인 판정을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변에 알리는 것이었다. 지인들에게 ‘뭘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모두가 ‘넌 할 수 있다’ ‘아직 할 일이 많다’고 응원했다. 힘이 생겼다.
2011년 연극 ‘오픈 유어 아이즈’를 무대에 올리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가슴 벅찬 행복을 느꼈다. 누구나 인생이라는 무대에 오르는 것을 주저하고 망설인다. 돌이켜보면 그럴 이유가 없었다. 넘어질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포기하고 내려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링’에 오르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시소’를 찍은 것도 도전의 일환이다. 앞만 보이는 근육병 환자 임재신 씨와 제주 여행을 떠나 인생의 참된 가치를 깨닫는 영화다. 내 모습이 어떻게 나올까를 걱정하지 않았다. 임재신 씨와 함께 희망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언제나 그렇듯, 희망의 논리는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2012년부터 딸을 위해 ‘슈퍼맨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연극 ‘오픈 유어 아이즈’에 이어 재즈음반을 발매하고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하는 것이다.
국내 3대 재즈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인 웅산은 그에게 “분명한 이유가 있는 목소리”라고 용기를 줬다. 멋있는 제안이었다. 웅산이 이끄는대로 재즈 보컬을 배웠다. 그는 영화 ‘시소’에서 재즈 보컬리스트의 매력을 선사한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또 다시 3가지 일을 하게 됐네요. 영화 ‘시소’를 개봉하고 올해 안에 책을 출간하고 두 번째 재즈 음반을 냅니다. 앞으로도 큰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살 거예요. 흐르는대로, 순리대로 살아가고 싶어요.”
[사진 = 송일섭기자 andlyu@mydaily.co.kr]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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