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리뷰]‘가려진 시간’, 사랑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사랑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시간을 흡수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 오랜 그리움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면 사랑의 얼굴이 선연한 모습을 드러낸다. 엄태화 감독의 ‘가려진 시간’은 적막하고 쓸쓸한 시공간에서 사랑을 지키고 키워나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맑고 순수한 판타지 멜로다.

엄마를 잃은 후 새 아빠와 함께 화노도로 이사 온 수린(신은수)에게 보육원에서 자란 성민(이효제)이 다가온다. 이들은 둘 만이 해석할 수 있는 암호로 추억을 쌓아간다. 어느날 공사장 발파 현장을 구경하기 위해 친구들과 산에 올랐다가 동굴 속에서 미스터리한 알을 발견한 이후 모두가 실종된 채 수린만 돌아온다.

며칠 뒤 자신이 성민(강동원)이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수린 앞에 나타난다. 수린은 멈춰진 시간 속에서 어른으로 자랐다는 성민의 말을 믿지만, 경찰과 마을 사람들은 성민을 범인으로 간주하고 추적에 나선다.

‘가려진 시간’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멈춰진 시공간을 다루는 창의적인 상상력이다. 모든 것이 정지된 곳에서 성민과 친구들이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신선하고 흥미롭다. 이삿짐 센터 직원의 손 위에 올려 있는 소파에 누워 있거나 젤리처럼 변한 바닷물을 만지는 장면 등의 아이디어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현실과 판타지가 서로 자연스럽게 갈마드는 편집의 리듬이 인상적이고, 비누 조각으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는 섬세한 디테일도 뛰어나다.

소년과 어른의 경계를 오가는 강동원과 신인의 풋풋한 감성을 신은수의 연기호흡도 영화의 몰입도를 끌어 올린다.

이 영화의 밑바탕에는 아이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어른에 대한 불신이 꿈틀거린다. 누구에겐 절박한 ‘사실’이 편견과 오해 속에서 간단하게 ‘거짓’으로 치부될 때 느껴지는 안타까움이 배어있다. 때론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

수린은 성민의 말을 믿었고, 성민 역시 수린이 믿어줄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가려진 시간’은 결국 사랑을 위해 시간의 쓸쓸함을 버텨내는 남자의 내밀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다. 사랑은 늙지 않는다.

[사진 제공 = 쇼박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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