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엄태화(34) 감독은 ‘꿈 일기’를 쓴다. 꿈에서 깨면 곧바로 옮겨 적는다. 10년전부터 써왔다. 그 이후 현실에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 어디서 많이 본 장소인 것 같은데, 꿈에서 본 공간일 때가 많았다. 현실과 비현실의 충돌은 엄태화 감독 영화의 동력이 됐다. 단편 ‘숲’은 꿈과 현실, ‘잉투기’는 가상세계와 현실의 부딪힘을 다뤘다. ‘잉투기’를 본 외국관객은 “판타지를 본 것 같다”라고 평했다.
8일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엄태와 감독은 “의도한 것은 아닌데, 돌이켜보면 내 작품 성향이 그런 것 같다”면서 “‘가려진 시간’도 판타지와 현실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가려진 시간’은 의문의 실종사건 후, 시공간이 멈춘 세계에 갇혀 홀로 어른이 되어 돌아온 성민(강동원)과 그의 말을 믿어준 단 한 소녀 수린(신은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시간’을 다루고 싶었어요. 이미지 서치를 하고 있는데, 큰 파도 앞에 서 있는 남녀의 사진에 꽂혔죠. 왜 저렇게 서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현재에서 미래를 가거나 미래에서 현재를 오가는 영화는 많았는데, ‘멈춰진 세계’를 다룬 작품은 많지 않았다. 시공간이 정지된 곳에서 나이를 먹는 남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디테일에 승부수를 걸었다. 판타지가 아니라 진짜 현실처럼 보이도록 했다. 공중에 떠 있는 소파에 누워 있거나 바닷물이 젤리처럼 움직이는 장면에서 상상력을 발휘했다. 어떤 장면은 팀 버튼 감독의 ‘미스 페레그린과 아이들의 집’과 거의 흡사했다. 편집하고 있는 도중에 스태프에게 비슷한 장면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깜짝 놀랐죠. ‘이거 뭐야’ 싶더라고요. 저는 ‘미스 페레그린’을 아직 안봤어요. ‘비틀쥬스’ ‘가위손’ 등 팀 버튼의 초기작을 좋아해요. ‘배트맨2’를 특히 좋아하고요. 제 무의식 속에 팀 버튼의 영향이 발휘된 것일 수도 있죠.”
현실과 비현실을 섞는다는 점에서 그는 팀 버튼을 닮았다. 외로운 소년 또는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점도 교집합을 이룬다. 팀 버튼이 좀더 환상적이라면, 그는 좀더 현실적이다.
“‘가려진 시간’은 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을 다룬 영화일 수도 있고요, 믿음이 없는 사회를 그린 메타포로도 읽힐 수 있어요.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사회잖아요. 모든 것이 음모론 같기도 하고요. 과연 ‘믿음’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만들었어요.”
[사진 = 송일섭기자 andlyu@mydaily.co.kr]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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