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최창환 기자] 부산 kt가 서울 SK에 26점차 대역전극을 연출한 지난 13일 잠실학생체육관. 남다른 복귀전에서 수비로 역전승에 공헌, 동료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선수가 있었다. kt 포워드 이민재(29, 189cm)였다.
이민재에게 이날 SK전은 지난 2014년 3월 1일 전주 KCC전 이후 988일 만에 치른 복귀전이었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 끝에 돌아온 프로농구 무대다. kt와의 계약이 만료된 채 현역으로 군 복무에 임했던 이민재는 부대에서도 꾸준히 몸 관리를 했고, kt는 그의 절실함을 높이 평가해 지난 여름 1군 계약을 맺었다.
이민재가 조동현 감독으로부터 SK전 출전을 통보받은 건 지난 12일 밤이었다. “감독님이 방으로 부르셨다. 엔트리조차 들어본 적이 없던 터라 14일 2군 경기(D리그) 준비하라는 얘기를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일 화이트 전담수비를 맡길 테니 잘해봐’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민재의 말이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인만큼, 이민재는 밤새 테리코 화이트(SK)를 봉쇄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 화이트는 kt와의 경기 전까지 평균 30.4득점 3점슛 4개를 기록한 스코어러였다. 각각 리그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고, 3점슛 성공률은 50%에 달했다.
화이트의 경기영상을 새벽 2시까지 찾아보다 잠든 이민재는 “차원이 다른 선수더라. ‘어떻게 막아야 하지?’ 싶었다.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가 띄워준 패스를 앨리웁 덩크슛으로 연결하는 영상도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걱정이 앞섰지만, 이민재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곤 경기 직전 “웬만한 수비나 파울에도 표정 변화가 없는 선수”라는 변기훈(SK)의 말을 들은 후 한 가지 다짐을 했단다. ‘득점을 20점 미만으로 묶자. 포커페이스라던데, 내가 한 번 찡그린 표정을 짓게 만들어보자.’ 이민재의 각오였다. 그만큼 화이트를 괴롭혀보겠다는 의미였다.
조동현 감독은 이민재를 선발로 기용했다. 적장 문경은 감독조차 “이민재는 왜?”라는 반응을 보인 용병술이었다. 이민재가 가장 최근 선발로 출전한 경기도 2014년 3월 1일 KCC전이었다.
‘깜짝 선발’이었지만, 이민재는 파울아웃 당하기 전까지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화이트를 괴롭혔다. 때론 터프한 몸싸움도 펼쳤다. 종종 화이트의 영리한 공격에 속아 파울을 범하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돌파를 허용하더라도 달라붙는 수비로 3점슛은 최대한 주지 말아야 한다”라는 조동현 감독의 주문도 이행하려 노력했다.
실제 이민재는 3쿼터까지 화이트를 18득점으로 묶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화이트가 3쿼터까지 올린 점수는 평균 22.6득점이었다. 더불어 이날 3쿼터까지 화이트의 3점슛은 5개 가운데 1개만 림을 갈랐다. 이민재가 나름대로 내걸었던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박상오는 “화이트가 결국은 연장전까지 치르며 31득점을 올렸지만, (이)민재가 터프한 수비를 꾸준히 해줬던 덕분에 이전 경기만큼 과감하게 슛을 던지지 못한 상황도 종종 있었다”라고 견해를 전했다.
이민재는 “우리 팀 형들도 ‘화이트 표정 한 번 깨보겠습니다’라고 했을 땐 웃었는데, 경기 도중에는 ‘네가 얼마나 귀찮게 했기에 표정이 저러냐?’라고 하시더라”라며 웃었다. 이민재는 이어 “상대팀 입장에서는 내가 싫겠지만, 파울하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수비를 하는 게 전문 수비수들의 역할이라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민재는 이날 3쿼터까지 단 1분만 쉬었고, 4쿼터와 연장전에도 종종 투입돼 총 32분 27초를 소화했다. 팀 내에서 4번째로 많은 수치이자 개인 통산 가장 많은 출전시간이기도 했다. 이전까지 통산 98경기 가운데 최다 출전시간은 23분 5초(SK 시절이던 2011년 11월 15일 KCC전)였다. 3득점 1리바운드 1스틸 1블록을 남겼지만, 이민재의 수비 공헌도는 기록지에 새겨진 숫자 이상이었다.
이민재는 “30분 이상 뛴 건 처음이었는데, 팀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 죽기 살기로 했다. 쥐가 나기도 했지만, 감독님이 다독여주셨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모습이 보여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민재의 끈기 있는 수비에 동료들도 칭찬을 건넸다. 조동현 감독이 “민재가 화이트 수비를 잘해줬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룸메이트 박상오는 “비시즌부터 지금까지 훈련을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던 선수다. 민재처럼 절실함을 갖고 있는 선수도 드물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13일 SK전에서 극적인 승리를 따낸 kt는 오는 18일 인천 전자랜드와의 홈경기 전까지 경기가 없다. 마침 5연패 사슬도 끊은 만큼, 1군 선수들에겐 경기 후 꿀맛 같은 외박도 주어졌다.
하지만 이민재는 “나는 아직 쉴 군번이 아니라 그냥 숙소(경기도 수원 소재)로 돌아왔다. 혼자 숙소에 있는 걸 보고 매니저 형이 뭐라고 했지만, 계속 운동하면서 컨디션을 조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력은 다소 뒤처질지 몰라도, 지독한 연습벌레라는 점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욕심은 크지 않다. 농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궂은일, 리바운드 참여가 내 역할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슛 찬스가 올 때만 과감히 던지면 된다”라고 운을 뗀 이민재는 “수비로 보탬이 되는 활력소가 되고 싶다. 물론 출전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다는 개인적 목표는 있다. 부진했던 팀이 이제 더 많이 이길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라고 포부를 전했다.
[이민재(상), 이민재가 테리코 화이트를 수비하는 모습(하). 사진 = 마이데일리DB, KBL 제공]
최창환 기자 maxwindo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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