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김수현, 이홍기 등 스타들이 푹 빠져 요즘 대세 스포츠로 떠오른 볼링. 하지만 스크린에서 볼링 소재를 다룬 작품은 생소하다. 그런데 '도박 볼링'이라니 더욱 낯설다. 여기에 자폐아 성향의 캐릭터. 표현의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명연기로 소화한 '말아톤'(2005년) 속 조승우와의 비교도 피할 수 없는 부담감을 떠안고 가야 하는 역할이다.
바로 이 영화 '스플릿'의 영훈 역할이 그러하다. 자폐아 볼링 천재라는 간략한 설명에서부터 위압감이 느껴진다. 누가 제 옷처럼 영훈 캐릭터를 입을 수 있을까 싶지만, 배우 이다윗이 가히 놀라울 정도로 완벽 빙의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접할 당시엔 도전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충무로 유망주다운 패기로 작품에 뛰어들었다. '스플릿'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다윗은 함께 호흡을 맞춘 유지태의 말처럼 연기 얘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열정 가득한 배우였다.
"시나리오를 보고 재미와 더불어 감동을 받았어요. 볼링 영화라는 게 신선했고 이런 저런 요소들이 잘 담겨 있었어요. 하지만 영훈 캐릭터를 소화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못하겠다고 말씀드리려고 했었어요. 그랬는데 뭔가 저 스스로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도망치는 거 같고 부끄럽고, 그래서 결국 도전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캐릭터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기쁨, 슬픔 등을 표출하지 않는 감정 변화 없이 늘 일정한 톤을 유지하는 인물로 말부터 행동까지 모든 것이 물음표였다. 촬영 이후 단 한 순간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가득했었죠. 영훈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신경이 쓰였어요."
고민의 해결책은 노력뿐이었다. 온 열정을 쏟아부었다. 영훈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이다윗이 괜히 충무로 유망주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 했다.
"최국희 감독님을 찾아가 작품과 관련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실제 심리 치료사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요. 자폐아에 대한 공무를 엄청했어요. 그런 정신적 장애로 인한 특징들을 A4 용지에 쫙 쓰면서 정리했죠. 영훈 역할은 중증 자폐 성향 설정이 아니라 이 특징들 중 몇 가지를 조합해 만들어나갔어요. 우스꽝스러운 볼링 포즈들은 연습을 하면서 감독님과 함께 정했죠. 4개월 정도를 매일 볼링 연습했는데 어쩌다 취한 포즈가 영화에 쓰이기도 했어요."
이제서야 환하게 미소 짓는 그였다. 인터뷰 전날 열린 VIP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뒤에야 영훈 캐릭터를 홀가분하게 벗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동안 항상 마음속에 뭔가가 걸려 있었어요. 데뷔 14년간 이렇게까지 신경 쓰인 건 처음이었던 거 같아요. 보통 촬영이 끝나면 내 한계까지 다 했으니 결과물을 보고 고칠점이 있으면 보완하자는 마인드였거든요. 근데 '스플릿'은 크랭크업 뒤에도 걱정되고 불안하더라고요. 최국희 감독님께 매일 전화해서 영화 잘 나왔나요라고 묻기도 했었네요. 하하. 하지만 VIP 시사회 날 객석에 앉아 있는 스태프들을 보면서 이제 다 끝났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말이에요."
이처럼 촬영 내내 치열하게 연기했고 고민을 거듭한 이다윗. 또 한 뼘 눈부신 성장을 일궜다. 앞으로 펼칠 활약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배우다.
"'스플릿'은 가족의 탄생을 담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유지태, 이정현 선배와 호흡을 맞추면서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드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함께 하는 신을 찍을 때마다 감동을 받아 울컥했던 적이 많았어요. 관객분들도 저와 같은 감동을 받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스플릿' 스틸]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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