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박영순의 커피와 건강]
“커피를 많이 마시면 치아가 시커멓게 된다”는 오래된 소문 때문에 커피를 꺼려해 왔다면, 당신은 그 시간만큼 손해를 본 것이다. 향미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관능적 행복과 나른함을 일깨우는 짜릿한 각성의 축복을…….
치아를 착색할 수 있는 물질은 커피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저명한 치의학박사인 타리크 이드리스는 “흰색 셔츠에 얼룩을 남길 정도라면 치아도 변색시킨다”고 밝혔다. 색깔이 있는 먹을거리는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치아를 변색시킨다는 말이다. 그런데 유난히 커피가 치아를 변색시키는 위험한 물질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치아 미백시술을 하는 일부 ‘병-의원의 마케팅’(?)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아예 부인할 순 없겠다.
지표로만 봐선, 한국인에게 ‘커피로 인한 치아변색 유발’은 그렇게 위협적으로 비쳐지지 않는다. 지난해 어느 나라가 커피를 많이 마시는 지를 살펴본 조사에서, 네덜란드인이 하루 평균 2.4잔을 마신 것으로 나타나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핀란드(1.8잔)와 스웨덴(1.4잔)등의 순이었다. 미국은 0.9잔으로 16위에, 한국은 0.32잔으로 43위에 머물렀다. 일부 인터넷에 사이트에 떠있는 내용대로 커피로 인한 치아변색이 진짜 심각하다면, 네덜란드인들의 치아는 온통 검게 물들어 있어야 한다.
치아 변색의 원인은 유전적 요인과 노화, 흡연, 유색소 음식섭취 등이다. 치아의 바깥쪽은 단단한 법랑질, 그 안쪽은 상아질, 다시 그 안에는 치수 조직이 있다. 치아의 색상은 반투명한 법랑질을 통해 비치는 상아질이 좌우한다. 상아질의 색조는 사람마다 다르게 타고 나는데, 나이가 들면서 법랑질이 마모돼 얇아지는 바람에 노란 상아질이 강조돼 누렇게 보인다.
녹차, 와인, 니코틴 등이 치아의 변색을 유발하는 것은 치아표면에 색소가 침착하기 때문이다. 치아 표면은 매끄러워 보이지만 미세한 관이 있어 색소가 들어가면 다시 빠지기가 쉽지 않다. 커피와 녹차, 와인 등이 치아 변색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데에는 탄닌(Tannin)이라는 공통 물질이 있다. 탄닌은 식물에 널리 분포하며 단백질과 결합해 변성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가죽을 무두질하는데 이용된다. 여러 가지 물질의 혼합물이기 때문에 특정한 화학구조로 표현하기 힘들다. 탄닌은 치아의 변색을 유발하는 핵심적 물질인데, 한 잔에 담기는 커피액에 존재하는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커피의 진한 갈색은 흰 셔츠를 물들이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이드리스 박사의 말대로 치아변색을 유발하는 물질이지만 녹차나 와인과 같은 수준에서 이야기할 바가 못 된다. 커피의 일생에서 탄닌은 빨간 열매의 과육에 존재한다. 하지만 씨앗을 발라내는 가공과정에서 생두에는 거의 남지 않게 된다. 특히 수세식 가공한 커피에서 탄닌을 발견했다는 보고는 없다. 파치먼트에 점액질이 붙은 상태로 건조하는 내추럴이나 펄프드 내추럴에서 탄닌이 발견되지만 그 양은 미미하다.
커피의 맛이 쓰고 떫은 것이 탄닌에서 비롯되는 것은 오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커피가 관능적으로 이런 맛을 내는 것은 탄닌이 아니라 트리고넬린이라는 성분의 역할이 크다.
커피를 마시고 치아변색이 우려된다면 물로 입안을 헹구는 습관만으로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이 말은 치아가 변색됐을 때는 그 원인을 커피 보다는 다른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덧붙여, 커피를 마시면 치아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이 떠도는 것도 따져 볼 일이다. 커피 자체보다는 첨가되는 설탕, 시럽, 크림 등이 원인물질이기 때문이다. 이들 첨가물은 입 속의 산성 성분을 증가시켜 충치의 원인인 산도를 높이고, 세균을 생성해 치주염이나 충치를 유발하거나 악화시킨다.
커피로 인한 치아변색에 대한 염려를 부추기는 말을 들을 때는 그렇게 주장하는 측이 어디인지 잘 헤아려야 한다. 국내 치아미백시장이 1000억 원을 훌쩍 넘었다는 전언이다.
(끝)
[사진설명. 커피전문가들은 커피의 향미적 특징을 파악하고 품질을 평가하기 위해 치아사이로 커피액을 역분사시켜 향기를 불러일으키는 커핑(Cupping)을 한다. 치아에 커피액을 강하게 마찰을 시키지만 치아가 변색됐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 제공 = 커피비평가협회]
*이 글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필자약력
필자는 뉴욕 CIA 향미전문가, 프랑스 보르도 와인블렌딩, 일본 사케소믈리에, 이탈리아 바리스타. 미국커피테이스터, 큐그레이더 등 식음료관련 국제자격증과 디플로마를 30여종 취득한 전문가이다. 20여년간 일간지에서 사건 및 의학전문기자를 지냈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