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얼마전 열린 박혁지 감독의 ‘오 마이 파파’ GV 현장. 초로의 여성 관객은 “이 영화를 국회에서도 상영하고, 공중파에서도 틀어줘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관객의 목소리는 울분에 찬 것처럼 느껴졌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지도자가 위법을 저지르는 현실 속에서 ‘오 마이 파파’의 울림이 더 크게 퍼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오 마이 파파’의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1957년 6월 사제 서품을 받고 그해 12월 자원해서 부산을 찾았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가장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였다.
‘소년의집’을 열어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보듬었고, 최고의 교육을 제공해 건강한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게 했다. 매일 미국의 후원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자금을 마련했다. 소년의 집 뿐만 아니라 서울 도티기념병원, 마리아모성원 등을 개원해 태아 생명 보호운동도 펼쳤다. 그의 가르침은 필리핀, 멕시코, 브라질, 과테말라, 온두라스에서도 꽃을 피웠다.
소 신부는 ‘자발적 가난’을 자처했다. 평생 한 벌의 수단(신부복)만 입었다. 성당 옆 쥐가 나오는 판자촌에서 살았다. 신발은 뒤축이 해졌고, 가죽 가방은 낡았다.
극중 어느 수녀의 말처럼, 가난하게 사는 일은 힘들다. 소 신부는 자발적 가난을 몸소 실천하며 이웃사랑의 가치를 실현했다. 물욕 없이 묵묵히 가난한 아이들의 삶에 헌신하는 소 신부의 삶은 존경심을 불러 일으켰고, 1992년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 ‘가경자(가톨릭교회에서 복자 전 단계의 시복 후보자로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로 선정됐다.
소 신부의 무소유는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탐욕은 갈수록 추악해지고, 나눔은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에서 스스로를 깨끗하게 비워내 세상에 빛을 밝혔다. 그 빛은 또 다른 빛으로 반짝거리며 온 세계에 따뜻한 온정으로 퍼졌다. 검소함은 종교인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다.
이 영화의 네이버 관람객 평점은 9.5점에 달한다. 관객들은 댓글에 “국민을 위해 봉사고 희생하는게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영화” “요즘 같은 시대에 꼭 봐야하는 영화”라는 평을 올리고 있다.
여성관객의 바람처럼,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이 모두 이 영화를 관람하기를 희망한다.
[사진 제공 = 모멘텀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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