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고동현 기자] 이병규가 정든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벗는다.
프로야구 LG 트윈스는 "이병규가 은퇴를 선언했다"고 밝혔다. 1997년 프로 데뷔 후 줄곧 LG 주축 선수로 활약한 그이기에 굵직한 기록들도 많이 남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발자취를 돌아본다.
[1997년 신인왕] 4억 4000만원이라는 계약금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병규는 '거물 신인'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프로 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것은 아니다.
이병규는 팀과 팬들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했다. 첫 시즌에 126경기 전경기에 나서며 타율 .305를 남겼다. 홈런은 7개에 만족했지만 2루타가 31개에 이르렀으며 도루도 23개를 기록했다. 그 해 신인왕은 당연히 이병규 몫이었다.
[1999년 30-30] 1999년은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30홈런 타자만 13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잠실구장은 타자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구장이다. 30홈런 타자 중 잠실을 홈으로 쓰는 선수는 딱 2명이었다.
타이론 우즈(당시 두산)과 이병규가 주인공이었다. 3년차였던 이병규는 그 해 정확도와 파워, 스피드를 모두 갖춘 타자였다. 타율 .349와 함께 192안타를 기록했다. 또한 홈런 30개와 도루 31개를 남겼다. 잠실을 홈으로 쓰는 선수의 30-30은 이병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2013년 타율왕] 1974년생인 이병규에게 2013년은 한국나이로 40살이 된 해였다. 이미 선수로서 황혼에 접어든 나이지만 이병규의 '컨택 능력'은 어디가지 않았다. 98경기에 나서 타율 .348를 기록했다. 이는 1999년 .349 이후 자신의 단일 시즌 두 번째로 높은 타율이기도 했다.
이병규는 손아섭(.345)를 제치고 타율 1위에 올랐다. 최고령 타율왕에 등극한 순간이다. 타석수(401)와 규정타석수(396)가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이것으로 그의 타율 1위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었다. 또한 그 해 LG는 2002년 이후 11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이병규에게는 여러모로 잊지 못할 시즌이 됐다.
[2013년 사이클링히트 & 10연타석 안타] 2013년에는 진기록도 풍년 이었다. 7월 5일 목동 넥센전. 5번 지명타자로 나선 이병규는 첫 타석에서 좌전안타를, 두 버째 타석에서 우월 홈런을 때렸다. 이어 세 번째 타석에서 오른쪽 2루타를 기록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7회 이보근을 상대로 3루타를 날리며 사이클링히트를 완성했다. 통산 15번째이자 KBO리그 최고령 사이클링히트가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진기록을 세웠다. 7월 3일 잠실 한화전 세 번째 타석을 시작으로 7월 10일 NC전 손민한을 상대로 안타를 기록하며 10연타석 안타를 달성했다. 이는 2004년 김민재(당시 SK)가 세운 9연타석 안타를 뛰어 넘는 KBO리그 신기록이었다.
[2014년 2000안타] 이병규는 어떤 공이든 안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 받았다. 흔히 말하는 '배드볼 히터'에 가까웠다. 데뷔 시즌부터 151안타를 때린 이병규는 1999년 192안타, 2000년 170안타 등 가파른 속도로 안타를 추가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즈에서 뛰며 안타 적립이 잠시 중단됐지만 국내 무대로 복귀한 뒤 안타 행진을 다시 시작했다. 2011년 164개, 2012년 126개, 2013년 130개 등 매년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2014년 5월 6일 잠실 한화전. 이날 전까지 1998안타를 기록 중이던 이병규는 첫 타석에서 중전안타를 때린 데 이어 8회 또 한 번 중전안타를 기록하며 대망의 2000안타를 달성했다.
KBO 역사상 4번째 2000안타이자 첫 단일팀 2000안타, 최소경기 2000안타(1653경기)였다.
[이병규. 사진=마이데일리DB]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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