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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이건 아닌데' 싶어도, 화가 나는 상황이라도 참고 지냈어요. 그렇게 참은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 제 안의 어느 한 구석에 응축되어 있더라고요."
처음 마주한 오정연은 10여분 가까이 인터뷰가 이어질 때까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KBS 32기 공채 아나운서. 카메라를 통해 10년 가까이 시청자들의 눈을 응시하던 그녀는 지난해 퇴사했고, 한 토크쇼에 출연해 '왜 아나운서를 그만두었느냐?'는 질문을 받자 "뉴스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괴물 같았다"고 털어놨다.
개인사가 언론에 사실과 다르게 보도되더라도 다시 참을 수밖에 없었지만, '어딘가 나보다 훨씬 억울한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녀는 스스로 '뉴스를 믿지 못하는 아나운서'가 되었고, 뉴스를 진행하지 못할 정도의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솔직히 못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연기 잘하시던데요"라고 말을 건네자 오정연은 "감사합니다" 하고 눈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저기 먼 지구 반대편으로 6개월여 항해를 떠났다가 이제 막 돌아온 기분이에요. 정말 다른 세계, 처음 접하는 세계였습니다."
MBC 드라마 '워킹 맘 육아 대디'에서 오정연은 계모를 "아줌마"라 부르고, 남편은 무시하고, 성공에 눈이 먼 악녀 주예은을 연기했다. 그녀와 절친한 MBC 서인 아나운서는 제작발표회 사회를 보던 중 돌연 "저 순둥이가 악역을 한다니" 하고 걱정했었다.
연기는 투박했지만, 주예은이 한(恨)을 끄집어내 소리치는 건 마치 오정연이 실제로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절규이자 마음 속 깊이 쌓였던 울분의 토로 같았다.
"지금껏 순응하고, 두루두루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었어요. 웬만하면 웃고 넘어가고요. 아나운서로 살면서는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지켜야 될 규범이라든지, 정갈한 이미지를 위해서요. 다행히 주예은이라는 역할을 맡으면서 저도 제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 보고, 어루만질 수 있던 기회였던 것 같네요."
짧았던 인터뷰로 오정연의 인생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의 상처를 알게 되고 허황된 소문마저 사실인양 믿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보니, 쉽사리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오정연에게 조금은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아나운서요?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 전에는 사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학생이었거든요. 수강 신청도 발표가 있는 수업은 일부러 피해서 들을 정도였어요.
근데 2학년 때 어떤 수업에서 교수님이 즉흥 발표를 무작위로 뽑아서 시키셨는데, 그게 하필 저였어요. 발표는 어찌어찌 끝냈는데, 그때 그 교수님이 'TV에 네가 나오면 좋을 것 같구나'라고 스포츠캐스터를 추천하셨어요. 그때부터 관심을 가졌고, 스포츠캐스터도 아나운서의 한 분야라는 것을 알고 준비했어요. 그 교수님이 저에겐 은인이세요."
주예은이 계모를 처음으로 "엄마!"라고 부르며 울부짖던 게 떠올랐다. 오정연이 카메라 앞에서 그토록 서럽게 눈물을 쏟은 건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아나운서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마지막 질문에 오정연은 결국 답을 고르지 못하고 다음 일정으로 떠났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오정연은 소속사를 통해 문자메시지로 답장해왔다.
"고심 끝에 사표를 쓰고, KBS 동기들이 모여 송별회를 열어서 감사패도 만들어주며 앞날을 축복해주었을 때요.
아나운서로서의 10년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어요. 옛 동료들의 진심 어린 응원에 프리랜서로서 펼칠 앞날에 대한 용기도 얻게 되어서 참 행복했고요. 아나운서로서의 10년, 프리랜서로서의 10년을 잇는 다리가 되어준 시간이었어요."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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