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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영화 '흥부', 발상의 전환이 참으로 참신하다. 신선함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적 메시지까지 선사, 미덕을 고루 갖췄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 소설 '흥부전' 비틀기의 묘미를 짜릿하게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흥부'는 '흥부전'을 재해석한 영화다. 조선 후기 사회상 안에 흥부를 집어넣어 허구적 스토리를 가미한 팩션 사극.
그 줄거리는 이렇다. 천재작가 흥부(정우)가 남보다도 못한 형 조항리(정진영), 동생 조혁(김주혁) 형제로부터 영감을 받아 소설 흥부전을 집필하게 되고 이로 인해 도탄에 빠진 조선이 들썩이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담았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뻔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트렸다. 고전 속 형제의 사이와 달리 흥부, 놀부의 우애가 깊었다는 설정으로 시작부터 흥미를 돋운다. 흥부가 붓을 잡은 사연이 어릴 적 홍경래의 난 때 헤어진 형 놀부(진구)를 찾기 위해서라는 것. 고약한 심보의 놀부는 민란군 수장이라는 반전을 입혔다.
그러면서도 '흥부전' 고유의 결을 유지하며 낯설지 않게 다가갔다. 기존 캐릭터를 확장시켜 이야기를 더욱 풍성히 뻗어 나가게 했다. 단순히 선악으로 구별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 현시대를 관통하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한 가정의 가장 흥부는 백성의 정신적 지도자 조혁으로, 재물욕에 눈이 멀어 아우마저 저버린 놀부는 권세를 쥐지 못해 안달인 조항리로 대신해 판을 키웠다. 두 형제를 통해 빈부격차의 문제를 꼬집은 것에서 나아가 '백성이 곧 주인'이라는 주제 의식을 끌어냈다.
"꿈을 꾸게. 그리고 그 꿈을 사람들에게 전하게. 꿈꾸는 자들이 모이면 세상이 조금 달라지지 않겠는가? 땅이 하늘이 되는 세상"이라는 조혁의 대사는 지난해 광화문 촛불로 이룬 기적을 상기하게 한다.
여기에 역사적 사실을 버무려 심도 깊게 전했다. 과도한 세도정치로 힘을 잃은 왕 헌종 때를 배경으로 하고, 세도정치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일으킨 민란인 홍경래의 난, 조선 후기 최대 금서이자 대표적인 예언서 정감록 등을 녹여냈다. '흥부전'과 마찬가지로 풍자와 해학이 돋보인다.
영리한 흥부 캐릭터의 쓰임새로 몰입감을 높인다. 날로 피폐해져 가던 조선에서 흥부는 그저 형을 찾기 위한 일념 아래 음란서적을 쓰는 작가였다. 그런 그가 꿈꾸는 것조차 불허한다는 야욕에 가득 찬 조항리와 부패한 지도층에게 맞서는 지혜로운 양반 조혁을 만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달라진다. '흥부전'을 집필하고 혁명가로 거듭나지만, 거창한 사명감을 내세우진 않으며 한 개인이 지닌 움직임, 그 작은 희망의 불씨가 모이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보여준다.
특히 '흥부'는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 백미경 작가 필력을 새삼 느끼게 한다. 그는 첫 영화 각본이자 첫 사극 장르를 썼음에도 탄탄하게 완성했다. '장화, 홍련' '형사' 미술 감독으로 유명한 조근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믿고 보는 배우들의 조합도 '흥부'를 놓칠 수 없는 이유다. 정우, 정진영, 김응집 역의 김원해, 헌종 역의 정해인 등 출연진은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 그 이상의 열연을 펼쳤다. 정상훈은 김삿갓 역할로 분해 웃음을 책임졌다.
故 김주혁은 조혁 그 자체였다. "본분을 다하며 꿈을 꾸고 살라"고 강조하는 조혁의 모습은 꼭 그와 닮아 있어 깊은 울림을 선사하기도 했다. 20년간 묵묵히 연기자의 길을 걸으며 안방극장과 스크린에서 희로애락을 책임졌던 배우다. 이번에도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매료, 그가 떠났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작품을 보는 순간만큼은 잊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살아있는 우리의 동료이자 여러분의 배우"라는 정진영의 표현처럼 김주혁은 온전히 캐릭터로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설날 종합선물세트처럼 특별출연 라인업까지 화려하다. 놀부로 활약한 진구의 우정출연부터 흥부 제자 역의 천우희, 강하늘 등이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가수 김완선이 대비 역할로 깜짝 등장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흥부'는 오는 14일 개봉한다.
[사진 = (주)대명문화공장, 롯데엔터테인먼트]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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