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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배우 김해숙이 27일, 영화 '허스토리'로 관객들을 찾았다. 극 중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역할을 맡아 혼신의 열연을 펼쳤다. 오랜 기간 아픈 사연을 숨긴 채 살아왔지만 끝내 당당하게 일본 사법부에 맞서는 끈질긴 생존자로 활약했다.
감히 가늠하기 어려운 그 슬픔과 고통을 대변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김해숙은 "0.0001%라도 표현이 됐을까요? 정말 아직도 답을 모르겠습니다"라며 캐릭터에 대한 깊은 고뇌를 짐작케 했다.
"처음엔 겁도 없이 내 나이에 해야 할 역할이구나 하고 '허스토리'에 뛰어들었어요. 그런데 연기를 하면 할수록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 싶더라고요. 그간 굉장히 어려운 역할도 많이 해봤는데, '허스토리'는 그 아픔의 깊이와 마음을 아무리 해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여자로서 모든 걸 내려놓고 용기 있게 일본 재판부에 맞서 싸우는 그 과정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고 충격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이를 표현할 길이 없던 거죠. 그래서 제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었어요. 너무나 우울했고, 깊은 늪 속에 빠진 기분이었어요. 작품이 끝나고도 한동안은 우울 증세에 시달려야만 했어요."
45년 연기 인생을 뒤흔든 가장 큰 도전이었다고. 김해숙은 "나에겐 도전이었다. 이걸 내가 못해내면, 내가 여기서 멈추면 배우 김해숙이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내린 방법은 나를 백지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배우 김해숙을 지우는 게 가장 먼저였다. 제 감정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게 교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감정을 빼는 게 가장 힘들었다"라고 털어놨다.
값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스크린으로 옮겼기에 사명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허스토리'는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관부 재판'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 지난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23회에 걸쳐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나는 법정 투쟁을 벌인 10명의 할머니들 원고단과 이들의 승소를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실화를 조명했다.
"6년간 말이 23번이지, 그 옛날에 노인들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재판하기가 정말 고생스러우셨을 거예요. 이 자체만으로 대단한 일이죠. 게다가 여자로서 견디기 힘든 어려운 일을 겪었음에도 치유받기는커녕 손가락질받는 삶을 사셨단 말이에요. 이 가운데 용기를 냈다는 것이 정말 존경스럽죠."
이어 김해숙은 연출을 맡은 민규동 감독을 비롯해 김희애, 예수정, 문숙, 이용녀 등과 함께한 소감을 전했다. 여느 작품보다 뜨거웠던 촬영 현장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전 출연진, 민규동 감독님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찍었다. 혹여 누를 끼치는 건 아닌가 싶은 걱정에 더욱 최선을 다해 만든 영화다. 촬영장 열기가 무척이나 뜨거웠다"라고 밝혔다.
"'허스토리'는 정말이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이야기에요. 이미 알려졌어야 할, 진짜 중요한 얘기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워요. 할머님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들의 현재 삶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시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안고 가셨으면 해요."
[사진 = 송일섭기자 andlyu@mydaily.co.kr]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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