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
[김성대의 음악노트]
무상무념(無想無念). 다 비우고 모두 내려놓고 산다는 건 어쩌면 더 채우려 아등바등 사는 일보다, 더 가지려 발버둥 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돈보다 소중한 게 얼마든지 있다고 말들은 하지만 막상 돈이 없으면 소중한 것들이 떠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읽는 동안은 용기를 주지만 덮고 나면 다시 맹렬한 일상을 건네는 자기개발서들의 얕은 위로로는 우리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절대 감당할 수 없다는 것 역시 당신과 나는 잘 알고있다. 말한대로 살아간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린 그저 그러고 싶어할 뿐이고, 그럴 수 없기에 주문같은 말들에 휘둘릴 뿐이다.
장필순의 8집이다. 3년 전 봄부터 제주 지역 이름(소길리)에 꽃(花)을 붙여 '소길花'라 명하고 한 송이 두 송이 피워온 끝에 12곡을 묶었다. 이 앨범은 삶에, 일상에 지친 무방비의 우리 가슴에 커다란 구멍 하나를 뻥 뚫고 들어온다. 그 어려운 비움과 버림의 바람을 장필순의 안개같은 목소리는 기어이 붙잡아낸다. 새벽을 닮은 앰비언스의 고독을 물고 장필순은 나지막이 읊조리고 또 읊조린다. 거기에는 육상효가 각본을 쓰고 김홍준이 감독한 영화 ‘장미빛 인생(1994)’ 수록곡 ‘아침을 맞으러’도 있고,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 어떤날의 ‘그런 날에는’도 있다. 두 곡 모두 장필순의 오랜 조력자 조동익의 곡이다. 여기서 ‘아침을 맞으러’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 조동진이 자신의 동생 작품에 처음으로 가사를 준 곡인데, 바로 그 이유로 장필순은 자신의 신보 첫곡으로 이곡을 택했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삶을 마감한 조동진은 이 앨범 곳곳에 살아있다. ‘아침을 맞으러’에 이어 ‘저녁 바다’ 역시 그의 시를 머금어 온기를 내뿜고있고, 그의 동생들(조동익, 조동희)이 함께 쓴 ‘그림’ 역시 떠난 가족을 조용히 추억하고있기는 마찬가지다. 또 ‘낡은 앞치마’는 고인보다 3년 먼저 세상을 등진 고 김남희씨를 위해 장필순이 공들여 부른 곡이다. 이처럼 조동진을 향한 헌정(tribute)이라 해도 모자라지 않을 진한 그리움과 외로움의 정서가 이번 작품에는 가득하다. 마치 장필순의 목소리를 빌려 조동익과 조동진이 또 하나의 어떤날을 만든 느낌이랄까. 그 숨막히는 프로그레시브 정경이 음반 속 내내 펼쳐진다.
하지만 노래하는 장필순은 끊임없이 버리려한다. 아니, 끊어버리려 한다는 것이 더 어울리겠다. 이적이 준 ‘고사리 장마’에서도, 이상순이 준 ‘집’에서도 장필순은 법정 스님이 생전에 깨달은 ‘무소유’의 언저리에서 계속 쓸쓸해한다. 그는 같은 목소리로 다른 주제들에 똑같은 투명함을 입힌다. 그의 말처럼 그래서 음악은 손에 잡히지 않고, 잡히지 않는 그 음악은 “우울한 위로”를 우리에게 건넨다.
칠아웃(Chill-out Music)의 외피를 걸치고 잿빛 아날로그 기타 아래 떨궈진 아득한 감성. 장필순은 그렇게 또한번, ECM과는 다른 침묵의 소리로 자신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음색의 시를 써냈다. 그 시는 커다란 먹구름 아래 가수의 소박한 미소를 담은 재킷사진처럼, 기쁘지만 미안하고 아프지만 따뜻하다.
[사진제공=푸른곰팡이, 페이지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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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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