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뮤지컬배우 고상호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 되어 관객들에게 온기를 전하고 있다.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를 통해 인간과 로봇의 경계에서 진한 감성을 연기하고 있다.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스스로 고립된 삶을 택한 엠마와 가짜보다 더 진짜 같은 도우미 로봇 스톤이 서로 다른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잊고 지낸 온기를 선사하는 작품. 극중 고상호는 로봇 스톤 역을 맡았다.
고상호는 "아무래도 창작 초연이다 보니까 이 시작을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궁금하고 더 탄탄한 초연을 만들 수 있게 노력하는 중"이라고 운을 뗐다.
그간 고상호는 주로 초연 작품에 많이 참여했다. 제약이 많이 없기 때문에 힘든 부분보다 작품 만드는 재미가 좋다고.
"창작 초연은 만들어진 게 없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보니까 기준점이 명확하지 않고 무궁무진하다"며 "작가, 작곡가, 연출가, 배우가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수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극 하나를 끝내고 만들어나가는 재미가 있다"고 밝혔다.
고상호는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박해림 작가와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다. 리딩 공연도 하기 전인 지난해, 박 작가는 고상호에게 지나가듯 대본을 줬었다. 작품에 대해 간단히 피드백 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다른 뜻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고상호에게 왔다. 날 것의 대본부터 발전된 모습까지 모두 봤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출연을 결정한 고상호는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를 떠올리며 "당시에도 엄청 따뜻한 작품이었고, 읽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그게 결국 지금 연기에 투영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말 외로운 한 사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생을 산 사람, 인생 역경을 겪은 한 사람에게 로봇이 나타났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생각했어요. 이 로봇에게 하나하나 뭔가를 조금씩 얻어가면서 본인이 변해가잖아요. 결국 따뜻함을 느끼고요. 처음 대본을 봤을 때와 공연을 올린 지금의 공통점은 따뜻함인 것 같아요."
스톤은 사람이 아닌 로봇이기 때문에 연기적으로 접근할 때 더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써야 했다. 자칫 사람처럼 보여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마냥 기계적이게 보여서도 안된다.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로봇, 참 어려운 역할이었다.
고상호는 "사람이면 일단 고상호로서 다가가고난 다음 여러 면들을 만들어 나가는 스타일인데 로봇은 처음 만났을 때 사람이 아니니까 정말 달랐다"며 "기본적인 리액션 조차도 달랐다. 초반엔 대화를 주고 받는 것에 있어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들을 없애기 시작했다. 로봇이니까 반응들이 즉각즉각 이뤄지지 않더라. 그러다보니 패닉에 빠졌었다"고 고백했다.
"'어느 정도 선의 로봇 연기를 해야 할 것인가' 고민했어요. 완전 기계적인지, 아니면 완전 사람 같은지. 그 중간 어딘가에서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죠. 내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이었어요. 사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AI를 무서워 하는 탓에 더 다가가기 힘들었죠. 그래서 영화들도 많이 참조했어요."
스톤의 경계를 바로잡기 위해 인간과 로봇 그 어딘가에서 중심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이에 고상호는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모션을 택했다. 후에 엠마 마음을 열 수 있는 방법은 오히려 로봇이라는 존재를 명백하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오히려 로봇이기 때문에 엠마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매뉴얼을 따르는 로봇 느낌으로 연기했다"며 "정확한 패턴의 똑같은 것들을 보여주면서 엠마와의 장벽을 조금이나마 허물어트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활성화가 된 이후에는 또 달라요. 엠마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선 남자로서 접근을 해야했죠. 그래야 나중에 엠마에게 남편의 기억들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원래 남편의 성격과 행동들을 집어넣었어요. 장난기 많고 따뜻한 눈빛 등 몇가지가 있죠. 남편의 모든 것들이 이식된 로봇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넣었어요."
조금씩 변화를 준 스톤을 따라 엠마는 변화한다. 보여지는 관점에 따라, 엠마가 어떻게 보냐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스톤과 엠마는 곧 같이 가야 했다. 결론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엠마의 기억은 스톤을 통해 꺼내지고, 엠마의 심경 변화 역시 스톤 덕인 것이다.
"'뭐야?' 했던 로봇이 점점 친구가 된다. 점점 스톤이 사람인가, 로봇인가 헷갈게 만든다"며 "완전 로봇으로 해볼 때도 있고, 완전 사람으로서 해본적도 있고 중간 지점에 대해 경계를 많이 조절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연습 때는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흘린적도 많다. 그러나 그는 로봇이기 때문에 무대 위에선 눈물을 꾹 참고 있는다고.
고상호는 "연습 때는 같이 울어버린적도 많은데 참아야 한다"며 "공연할 때는 감정이 같이 가게 돼서 마지막까지 휘몰아칠 때 눈물이 엄청 나오려 하는데 어떻게든 참는다"고 털어?J다.
엠마 역 정영주, 유연, 정연의 연기에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확실히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느낌으로 감정을 이끌어내준다.
"엠마 역 세 분은 연륜, 감성, 욕쟁이로 표현할 수 있어요.(웃음) 정영주선배는 뭘 하지 않고 가볍게 툭툭 내뱉어도 연륜이 주는 것들이 있어 너무 깊어요. 내공이 상당하시죠. 같이 함에 있어서 의지가 돼요. 유연 누나 같은 경우 감성이 짙어요. '정말 외로웠겠구나' 생각하게 하는 엠마예요. 감정이 정말 딥하게 표현되죠. 정연 누나 같은 경우 욕쟁이라고 했지만 벽을 완벽하게 세워두고 틈을 이지 않으려는 엠마이기 때문에 그게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그 격차가 제일 큰 엠마에요. 깊게 풀어지고 그래서 더 깊이 성장하는 엠마 같아요."
고상호 역시 엠마를 보며 외로움에 대한 공감을 했다. "저는 늘 엠마다. 전 늘 외롭다. 배우 만큼 공허한게 없다"고 입을 연 그는 "늘상 공연 끝나면 제일 허무하다. 연습과 공연을 하는 동안 너무 작품에만 몰입하다 보니 남는 시간에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공허함이 있다"고 털어놨다.
"혼자 있을 때 더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스톤을 집에 두고 있어요. 제 고양이죠. 수다쟁이 고양이들이 시도때도 없이 울어요. 언제부턴가 같이 얘기하게 되더라고요.(웃음) 사실은 자문자답하고 있는 거지만.. 근데 이건 누구나 다 가진 외로움 같아요.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죠."
고상호는 이같은 외로움은 이를 치유해줄 스톤의 존재를 망각하고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감사함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모든 이야기"라는 것.
"지금 현재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다 비슷할 거예요. 크게 다르지 않죠. 깊이감은 다르겠지만 모두 엠마에 투영해보면 비슷한 지점이 많지 않을까요? 저 같은 경우 모든 인물과 작품에 사랑을 많이 투영시키는데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에서도 제 역할 안에서 그런 것들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어느덧 고상호는 데뷔 11년차를 맞았다. 그간의 10년을 돌아보면 자신이 대견하다고. 그도 그럴 것이 고상호는 어린 시절 제주도에서 무작정 올라와 배우에 도전하고, 10년간 일을 계속 해왔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제 다양한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배우가 됐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고상호는 "부모님께 '10년 동안 해서 안 되면 과감하게 버리겠다. 저 믿으시라'라고 말하고 시작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해온 것에 있어서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전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던 학생이었는데 어느 순간 '이게 답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하고싶은 것을 찾고 싶었죠. 당시 춤이 좋았고, 밴드 활동을 하면서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어요. 여러가지를 경험하며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좋은데 어떡하지' 하던 고3 때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처음 알게 됐죠."
우연히 한 극단 단원으로 발탁돼 서울로 올라온 고상호. 그간의 안정된 생활을 뒤로 하고 삶의 터전을 바꿔야 한다는 것에 무서움도 느꼈지만 6개월 동안 숙소 생활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스물한살 때까지 극단 생활을 하다가 주위 선배들이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학교를 하라고 해서 입학하게 됐다"며 "이후 군대에 갔는데 운 좋게도 군 뮤지컬 '마인'에 출연하게 되면서 데뷔를 했다"고 설명했다.
"제대 후 다양한 작품에서 앙상블을 했어요. 이후엔 소극장 리딩 공연을 엄청나게 많이 했죠. 그러면서 창작 초연의 맛을 알게 됐고, 개발 단계 작품을 만나는 것에 대한 소중함과 재미를 알기 시작했어요. 앞으로는 매체 연기에도 도전해 보려 해요. 어느 순간부터 자극이 많이 됐는데 극한의 디테일을 경험해보고 싶어요. 화면 안에서 미묘한 표정 변화와 목소리를 통해 어떤식으로 또 내가 통할 수 있을까 궁금하고 도전해보고 싶어요. 또 작품 안에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공연시간 90분. 10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원씨어터 2관. 정영주, 유연, 이율, 고상호, 이휘종, 최석진, 이상운, 임예슬, 박지은 출연.
[사진 = 좋은사람컴퍼니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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