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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대의 음악노트]
검은 바탕 위 깨진 코발트블루 거울 속엔 하얀 꽃무늬 시스루 블라우스를 입은 채 눈을 아래로 치뜬 여성 한 명이 서있다. 도그바이올렛(dogviolet). ‘향기가 없는 야생제비꽃’이라는 뜻이다. 디지팩 케이스를 열었다. 이 음반을 설명하는 건 여섯 줄로 요약된 크레디트와 빛이 할퀸 거울의 클로즈업 피사체를 얹은 CD 알맹이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크레디트는 작사, 작곡, 연주를 로렐(Laurel)이 했고 프로듀싱과 믹싱을 아넬-컬렌(Arnell-Cullen)이 했다는 정보를 시작으로 드러머(Samuel Roux), 마스터링 엔지니어(Ed Deegan), 레이블(Counter Records), 아트워크(Elliott Arndt), 매니지먼트(Chris Bellam/Underplay)를 차례로 폭로하고 있다. 내가 알았던 건 이 음반이 로렐이라는 아티스트의 데뷔작이라는 사실 정도였다. 나머지는 이 음반을 열어보고 알았다. 이제 앨범을 플레이어에 걸 차례다.
음반을 걸었다. 음악은 시작(‘Life Worth Living’)부터 남다르다. 리버브를 고루 바른 일렉트릭 포크 사운드와 보컬 어레인지가 들불처럼 번지는 사이 주위는 이내 라나 델 레이와 캣 파워의 새드코어로 사위어간다. 일단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어떤 면에선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느껴지는 그것은 깨지고 멍든 섹시함과 싱싱한 고독을 함께 머금었다. 이건 비범함을 넘은 음악의 핵심으로서 보이스다. 싱어송라이터의 타고난 역량 중 하나인 음색에서 로렐은 이미 1승을 거두었다.
로렐은 자신이 음악 할 운명임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4살) 알았다고 한다. 7살 때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꿈꿨던 그는 11살 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고, 13살 때 친구가 링크 걸어준 로라 말링의 ‘New Romantic’을 들은 뒤 음악 취향을 완전히 바꾼다. 로렐은 로라의 곡을 들은 그 길로 브리트니의 댄스 팝을 보류하고 스패니시 기타를 사 포크에 빠져들었다.
엘리 굴딩의 ‘Guns And Horses’를 카피하며 자신의 미래를 점치던 로렐은 집에서 만든 데모 ‘Blue Blood’를 온라인에 풀며 세상에 노크 했다. 프로 세계 입문은 2014년 싱글 ‘Fire Breather’를 통해서였다. 이 앨범 ‘DOGVIOLET’은 그렇게 로렐이 스무 살 때부터 다져온 실력을 세상에 펼쳐 보인 첫 번째 음악 고백이다.
황홀하면서 추한 사랑의 두 얼굴을 주제로 삼은 이 앨범은 퀸 오브 진스(Queen Of Jeans)보단 밝고 젠 챔피온(Jenn Champion)보단 침착하다. ‘Same Mistakes’와 ‘Adored’의 당당한 비트, ‘South Coast’에서 차분한 사색, 기도 같은 ‘Sun King’의 격정은 그 디테일이다. 어떤 트랙 어느 구간에 멈춰서도 앨범은 자신의 주인이 로렐이라고 증언한다. 싱글로서가 아닌 앨범으로 승부하겠다는 뮤지션의 다부진 선언이 이 앨범엔 있다. 적지 않은 트랙 수임에도 작품은 별로 지루하지 않다. 선언이 납득되는 순간이다.
2018년 영미권 인디팝/록씬은 귀한 신인 둘을 건졌다. 바로 스네일 메일과 로렐이다. 나이는 로렐이 5살 더 많지만 그래봤자 24살이다. 음악 색깔이 친가까진 아니어도 사촌 지간은 될 만큼 두 사람의 스타일은 통하는 구석이 있다. 둘을 나눈 개성이지만 둘의 공통점 또한 그 개성이다. 이룬 것보단 이룰 것이 더 많은 두 싱어송라이터의 첫 발이 여기저기 자국을 남길 연말연시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사진제공=MUSICAR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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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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