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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밟힐지언정 꺾이지 않는다. 짓밟혀도 기어코 일어난다. 무너져도 반드시 솟아난다. 영화 ‘말모이’는 일제 치하의 모진 탄압을 견뎌낸 조선어학회 선열들에 대한 가슴 뜨거운 헌사다. 선열들이 목숨 바쳐 지켜낸 우리말의 위대한 승리가 웃음과 눈물 그리고 감동의 3박자로 어우러져 강한 울림을 전한다.
1940년대 우리말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경성, 극장에서 해고된 판수(유해진)는 아들 학비 때문에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의 가방을 훔치다 붙잡혀 엉겹결에 우리말 편찬 작업에 투입된다. 전과자에다 까막눈이었던 판수는 난생처음 글을 읽으며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을 뜨고, 정환 역시 전국의 말을 모으는 ‘말모이’에 힘을 보태는 판수를 통해 ‘우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우리말을 없애려는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는 가운데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말모이 작업을 끝내기 위해 전국의 교사들을 소집하는 비밀 공청회를 추진한다.
‘택시운전사’로 천만관객을 동원했던 엄유나 작가는 ‘말모이’의 극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아 함께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의 온기를 담았다. ‘택시운전사’와 ‘말모이’에는 폭력에 굴하지 않고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따뜻한 연대가 숨쉬고, 희생과 헌신이 전하는 가슴 벅찬 감동이 도도한 강물처럼 흐른다.
까막눈 판수와 지식인 정환이 티격태격하다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고, 일제의 박해가 점점 폭압적으로 닥쳐오는 상황에서 조선어학회 회원들간의 고조되는 갈등도 긴장감 있게 구축됐다. 판수가 아들과 딸에게 쏟는 부성애는 마음 한 켠을 저리게 하고,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사전 편찬을 완수하려는 사람들의 동지애는 뭉클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후려치다’와 ‘휘갈기다’로 웃음의 포인트를 잡아내는가 하면, 판수가 성냥개비로 기역부터 시옷까지 그려놓고 끙끙대다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이응을 만들어내는 대목에선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엉덩이와 궁둥이의 차이를 분필가루로 설명하고, 각 단어를 팔도 사투리로 발음할 땐 리듬감을 살려내는 등 우리말의 특징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장면도 인상적이다.
유해진은 탁월한 유머 감각 못지않게 뛰어난 감정 연기로 극의 중심부를 단단하게 움켜잡았다. ‘소수의견’에 이어 다시 한번 유해진과 만난 윤계상은 한층 안정된 호홉으로 극에 녹아 들었다. 비중있는 조연부터 잠깐 등장하는 단역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극의 마지막에 올라가는 자막은 읽는 것 만으로도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말모이’는 2019년 1월 9일 개봉한다. 내년은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말모이’는 제 시간에 도착했다.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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