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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국민이 참여하는 역사상 최초의 재판이 열리는 날, 증거 증언 자백도 확실한 살해 사건에 8명의 배심원이 선정된다. 양형 결정만 남아있던 재판이었지만 피고인이 갑자기 혐의를 부인하며 배심원들은 예정에 없던 유무죄를 다투게 된다. 모두가 난감한 상황 속에서 원칙주의자인 재판장 준겸(문소리)는 정확하고 신속하게 재판을 끌고 간다. 그러나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하는 8번 배심원 남우(박형식)가 다른 가능성을 언급하자 나머지 배심원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홍승완 감독의 ‘배심원들’은 법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유쾌하고 따뜻한 호흡으로 진심을 다하는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승리를 담아낸다. 최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지켜본 관객들은 상식에 기반을 두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내지 않으려는 배심원들의 노력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만약 내가 배심원이 됐다면 어떤 평결을 내릴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연출이 배우들의 뛰어난 앙상블 연기와 어우러져 시종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펼쳐낸다.
풍부한 자료조사를 거쳐 법리적으로 막힘이 없도록 했고, 유사사건 50여건과 판결이 엇갈린 판결문 540여건을 분석해 치밀한 법정극을 만들어낸 점이 돋보인다. 배심원들이 직접 현장검증에 나서고, 실제 법정을 그대로 재현한 프로덕션 등 꼼꼼하게 설계된 디테일도 몰입감을 높인다. 도저히 뒤집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유죄의 조건들이 배심원들의 지적으로 조금씩 흔들릴 때마다 짜릿한 쾌감이 밀려온다. 선입견과 편견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서 쌓이고, 또 허물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연출력이 뛰어나다.
8명 배심원의 캐릭터 역시 생생하게 살아있다. 개인파산에 직면한 청년 사업가 남우, 늦깎이 법대생 윤그림(백수장), 남편 병수발을 했던 요양보호사 양춘옥(김미경), 재판보다 일당에 관심이 많은 무명배우 조진식(윤경호),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주부 변상미(서정연), 까칠한 대기업 비서실장 최영재(조한철), 다양한 실전경험을 갖췄지만 자격증이 없는 장기백(김홍파), 할 말은 할 줄 아는 취준생 오수정(조수향)은 회의를 거듭할수록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준겸 역시 판사 첫 임용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간다. 요컨대, 이들은 재판을 통해 자신을 성찰한다.
문소리는 시끌벅적한 소동극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영화의 중심을 제대로 잡는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상관,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배심원들, 과도한 언론의 취재 열기 속에서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빚어냈다. 데뷔 첫 영화 주연 데뷔작을 맡은 박형식은 열정적이고 순수한 남우 캐릭터를 반짝반짝 빛냈다. 벼랑 끝에 몰려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20대 특유의 싱싱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문소리와 박형식이 줄다리기를 하듯 시종 팽팽하게 주고받는 호흡이 영화의 긴장감을 살려냈다.
우리도 언젠가 이들처럼 배심원 출석 통지서를 받을 수 있다. 당신이라면 피고인의 유죄와 무죄를 확신할 수 있을까.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니오’를 외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타인의 아픔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
‘배심원들’은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사진 = CGV아트하우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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