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신소원 기자] 배우 안성기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걸어온 한국영화 역사의 길을 언급했다. 100년 가운데 무려 62년 간 영화인으로서 살아온 세월을 바로 어제 일처럼 언급했다.
2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사자'(감독 김주환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인터뷰에는 배우 안성기가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돌이켜보면 진짜 여러가지 일들이 많았어요. 우리 영화사를 보자면 전쟁 후 시작된, 보통 1955년부터 영화 필모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1957년도부터 영화를 했어요. 지금 관객들도 영화를 좋아하지만 그 때도 관객들이 영화를 참 좋아했어요. 1960년대에는 우리 영화의 전성기였어요. 1년에 200여 편을 제작했어요."
안성기가 밝힌 1970년대는 유신 정권을 빼놓을 수 없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유신이라는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문화 예술 산업의 일원으로서 부침을 겪었다. 그는 "영화가 도구로서 사용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반공 영화, 새마을 영화가 있었고 검열을 하기도 했어요. 본연의 모습을 많이 잃어갔던 1970년대였는데, 1980년대에 '바람불어 좋은 날'이라는 영화가 중요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시대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잘 담은 영화라는 것이었어요. 그 전에는 담을 용기도 없었고 그런 환경도 아니었는데 1980년대가 격변의 시기여서 가능했어요. 그 다음부터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선택해서 했고, 현실적이고 역사성 있는 영화들을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멜로·드라마를 잘 못하는 배우가 됐죠.(웃음)"
지난 1990년대부터 민주화 사회에 접어들었지만, 스크린 쿼터 문제로 한동안 또 다시 시끄러웠다. 안성기는 선배 배우로서 앞장섰다.
"1990년대 사회가 민주화가 되고 직배 큰 시련을 당하게 되죠. 우리나라 영화 점유율이 52%라고 하는데 그 때는 13%도 안 됐어요. 스크린 쿼터를 했어요. 그렇게 배우들이 목소리를 낸 건 세계적으로 없을 거예요. 그 당시에 인정을 많이 받았고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한미FTA 하면서 깨졌죠. 그 이후 우리가 자생력이 생겨서 크게 흔들리지 않았어요. 2000년대에 들어서는 디지털화돼서 적은 자본으로 큰 효과를 이뤄냈어요. 할리우드가 부러웠던 것이 필름을 마음대로 쓰는 것이었어요."
안성기는 40여 년 전 군대에서 잰 몸무게보다 현재 약 3kg 정도밖에 늘지 않았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10년에 1kg 씩 증가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매일매일 운동을 하면서 꾸준히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
"현장에 있으면 역할에 따라서는 배우들의 체력을 요하는 장면들이 많아요. 그 자체가 힘들면 그 부분이 영화에 나와요. 감독도 자기가 연출한 것에 못 따라가면 스태프들도 힘이 안 날 거예요. 요구하는 무엇이든지 가능할 수 있게 몸을 가볍게 만드는 건, 캐릭터마다 몸짓이 크고 이런 사람들도 느리더라도 그걸 장점으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될 수 있으면 가벼운 몸을 유지하고 싶었어요. 지금 72kg예요. 10년에 1kg씩 늘어가는건 나잇살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것 외에는 몸무게 변화가 없어요. 40년된 청바지가 있는데 아직도 입으면 들어가요. 낡았는데 기념으로 놔뒀어요."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신소원 기자 hope-ss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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