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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개그맨 손헌수가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공개했다.
22일 오전 방송된 채널A ‘행복한 아침’에서는 영화 제작과 기획사 운영, 앨범 발매까지 다양한 도전 이력의 소유자 개그맨 손헌수가 출연해 굴곡 많았던 본인 인생과 이를 극복한 비결에 대해 강연했다.
이날 손헌수는 “어린 시절 가난했는데 가난함 속에서 늘 밝았던 친구였던 것 같다”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3살 때까지는 저희 집이 굉장히 부자였더라. 저희 아버지가 국가와 같이 사업을 할 정도로 새시 사업을 크게 했다. 옛날 관공서 유명한 곳 새시는 다 저희 아버지가 했다. 잘 나갔던 사업가였는데 하루아침에 보증을 잘 못 서서”라며 아버지가 1983년에 3억의 빚을 지게 된 사연을 전했다. 당시 아파트 한 채가 700만원 정도였다고.
손헌수는 “제가 기억이 날 때부터는 방 한 칸에 4식구가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갖고 싶은 걸 못 가졌던 것 같다. 저란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욕심이 충족이 안 됐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재산이 한계지 않나. 내가 벌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러다 보니까 계속 궁핍하게 뭔가를 갈구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나중에는 제가 알바도 했다. 그대부터 조금 저의 욕구가 풀리기 시작했다”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신문 돌리기를 했다고 밝혔다. 우유, 전단 돌리기 아르바이트도 했다고.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내복을 선물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뭔가 어린 나이부터 일에 대한 책임감은 명확하게 있었던 것 같다. ‘주어진 임무, 역할에 대해 완벽하게 마무리 짓자’라는 건 지금도 그렇다”고 덧붙였다.
어린 시절부터 끼가 남달랐던 손헌수. 그는 오히려 현재가 더 끼가 없는 편이라며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동네 애들을 모아 박스를 세운 뒤 콘서트를 기획, 연출, 출연했다. 어른 100원, 애들 50원 해서 1350원 받아 그 당시 떡볶이 사 먹고 그랬다”고 어린 시절에 대해 전했다.
하지만 원래 꿈이 개그맨은 아니었다고. 그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엄두를 못 냈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M본부 코미디 프로를 그렇게 제가 좋아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예 개그맨 쪽은 생각도 안 했다. 어릴 적 꿈은 디자이너였다. 진학을 하려고 보니 학원을 다녀야겠더라. 저희 집안 사정으로는 말도 안 됐다. ‘어떡하지?’ 생각할 때쯤 고2인 저희 형이 그 당시 코미디 모델 아카데미 전단지를 보여주며 ‘형은 모델이 될 거야. 여길 지원할 거야’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할래’라고 했다. ‘돈 없잖아’라고 해 ‘돈 만들면 되지’ 해서 막노동을 주말마다 했다. 저랑 저희 형이랑 엘리트 모델 선발대회 오디션을 봤었다. 거기 지원해서 저희 형은 떨어지고 전 광고주 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씩 꿈에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연극배우를 할까 생각했다. 그 당시 공부도 안 하고 그림만 그리다 보니까 수능을 400점 만점에 157점을 받았다. 겁도 없이 제가 중앙대, 한양대, 동국대 이런 데 연극영화과를 지원했다. 심사위원이 기립박수를 하며 ‘수능은 안 나왔지만 이 연기력이면 우리 학교에 합격시켜줄게’ 이런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생각했는데 다 떨어졌다. 예전도 시험을 봤는데 다 떨어졌다. 그때도 개그맨 생각을 안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그맨 시험을 보는 친구가 도우미 역할을 해달라 부탁했고, 그 시험에서 친구는 떨어졌지만 손헌수는 붙었다고.
손헌수는 “그게 2000년이다. 개그맨 한 번에 되고. 6개월 만에 허무개그를 탄생시켰다”며 “허무개그로 4주 정도 바람잡이를 했다. 매주 할 때마다 방청객이 터지니까 감독님도 ‘안 되면 안 나가면 되지’ 해서 녹화를 하게 됐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허무 개그’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손헌수. 그는 “3주 나가니까 바로 그때부터 자고 일어나면 광고 섭외 전화가 왔다. 한 80~90개 들어온 것 같다. 결과적으로 저희가 찍은 건 하나였다. 저희가 뭔가 주도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매니지먼트도 없고. 국장님이 저희를 케어해주셨는데 국장님이 저희를 과대평가하셨던 것 같다. ‘너희들 광고 전화 오면 1억 5천만원 불러라’라고 했다. 그 당시 장동건 씨가 1억 2천만원 받을 때였다. 이게 삽시간에 광고계에 소문이 퍼졌다. 그때부터 툭 끊겼다. 그러다가 막판에 한 8~9개월 할 때 그 소문을 못 들은 광고회사에서 (제의가 왔다) 적정가에서 좀 낮춰 저희가 피자 광고를 찍었다. 제가 개인적으로 하나 찍고. 그게 다다”라며 웃픈 사연을 전했다.
군대에 대해서도 밝혔다. 지난 2006년 8월 산업기능 요원으로 복무를 시작했지만 병역 비리에 연루돼 2007년 재입대한 손헌수. ‘군대 두 번 간 연예인 1호’라는 불명예까지 안게 됐다.
“군대를 갔고, 또 갔다. 두 번을 갔다”고 말한 손헌수는 “방위산업체라고 공장에 출퇴근하며 기술직 요원으로 근무하는 게 있었는데 그런 걸 하는 도중 서울권에 있는 요원들이 부실 복무라고 해서 기사가 나고 조사를 받고 그럴 때였다. 저는 오산 쪽에 있었다. 공고 디자인과를 나왔기 때문에 자격증이 있었다. 조사를 받으라고 연락이 왔다. 조금 이상했던 건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조사를 받지도 않았는데 기사가 먼저 나오더라. 연루됐다고.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연루라는 단어를 굉장히 안 좋게 생각한다. 그럼 그냥 얘는 잘못한 사람이 된다. 9시 뉴스데스크에 딱 나오는데 너무 수치스럽고 죄송스러웠다. 조사를 한 번 받고 또 받기 전에 가서 전 다시 가겠다고 했다. 너무 부끄러워서. 특히 개그맨은 저를 보는 사람들이 불편하면 안 되지 않나. 안 되겠다 싶어서 두 번째 군대를 현역으로 가게 됐다”고 속사정을 밝혔다.
이어 “저는 정말 다시 군대 간 걸 잘했다고 생각한다. 독기를 품고 ‘세상과 싸워보자 여기서 꿈을 만들어나가자’ 생각했다. 사실 평생 책을 안 읽었다. 한쪽만 읽어도 잔다. 거기서 300권 넘는 책을 읽으며 세상이 보이고 미래의 꿈이 그려졌다. 거기서 드림북이라는 나름 자서전처럼 만든 게 있다”며 당시 만들었던 드림북을 공개했다.
‘피구왕 통키’의 현재 모습을 그린 영화 ‘통키는 살아있다’도 선보였다고. 손헌수는 “그 생각을 했다. 기존에 있는 코미디언이 하는 코미디 영화는 너무 코미디적인 요소를 많이 넣다 보니까 다소 유치한 감이 있다.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리자고 생각해 페이크 다큐로 갔다. 저를 투영한 것 같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봐주지 않는 나 그리고 통키. 그렇게 투영해 통키를 써나가고 투영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작품을 미장센 영화제에 출품,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고. 이후 만든 ‘소시민’이라는 단편 영화도 서울독립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고 전했다.
손헌수는 “네 번째 한 게 첫 장편영화”라며 “단편의 시스템과는 완전 다른 개념”이라고 말했다. 당시 감독, 작가, 주연, 현장 PD, 섭외 등을 그가 직접 했다고. 그는 “이게 되겠냐”며 사금융 대출을 받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시작할 때 세 군데 빌렸다. 1금융권, 2금융권은 이미 빌려 돈을 만들어 놓고 찍으면서 사금융권에서 빌렸다. 총 8개를 빌렸다. 이거 안 되겠다 싶어 중단을 선언했다. 첫 장편이 그렇게 망했다”고 털어놨다.
손현수는 “마지막 회사가 4년 정도 이어왔던 회사인데 그건 잘 됐다”며 “갑자기 돼지 열병으로 공연을 아예 못 하게 됐다. 그러면서 그 사업을 접었다. 작년 3월에 접기 시작해서 10월까지 정리하는 시간이 걸렸다. 그때 거지였다. 그렇게 작년은 숨이 목까지 찬 상태여서 200일 정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도전을 계속해 온 손헌수. 그는 “제가 8년 전에 유튜브 세상이 올 줄 알았다. PPT를 돌리며 돌아다녔는데 다 거절당했다. 혼자 회사를 해왔다. 그런데 작년에 말도 한 되게 한 달 안에 회사 3군데서 전화가 왔다. 잘 된 것들만 해서 다시 회사를 꾸렸다. 제가 대표도 안 한다. 저는 기획만 하는 그 역할을 하고, 회사를 운영하고, 앨범을 냈다. 빚을 갚으려면 행사를 많이 해야 하니까 트로트를 하나 냈다. 요즘 트로트를 많이 하지 않냐. ‘너도 나도 내니까 너도 내냐’는 오해를 받는다. 전 그게 아니었다. 5년 전 앨범을 낼 때 이미 계획이 40살부터는 트로트를 하자였다. 이런 붐이 있을지 모르고 한 거기 때문에 떳떳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손헌수는 “작년에 다시 회사가 만들어지는 걸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책에서 봤던 건데 제가 꿈꾸고 행하면 우주의 기운이 바뀐다고 하더라. 그게 딱 떠오르더라. 내가 열심히 이것에 대해 파면 기운이 오나 보다. 정확히 작년에 딱 왔다”고 말했다.
[사진 = 채널A 방송 캡처]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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