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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권혜미 기자] 방송인 장성규, 개그우먼 장도연, 영화감독 장항준이 1988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강헌 사건'을 조명했다.
14일 밤 방송된 SBS스페셜 파일럿 프로젝트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선 지강헌 일당에게 인질로 잡혀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이날 방송에서 이야기꾼의 역할로 등장한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은 각각 자신의 친구들을 초대한 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장도연은 개그맨 김여운을, 장성규는 아나운서 김기혁을, 장항준은 개그우먼 송은이를 초대했다.
세 사람은 모두 "1988년부터 이 이야기가 시작된다. 10월 2일 올림픽 폐막식이 있었다. 1988년 10월16일 서울 올림픽만큼 대한민국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이다. TV에 생중계된 일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장도연은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이다. 무심하게 TV를 튼 사람은 '이게 영화가 아니라고?'하고 TV를 보게 됐다"고 운을 뗐다. 장성규는 "북가좌동에서 인질극이 생중계된 거다. 권총을 든 남자와 겁에 질린 여자가 있다"고 분위기를 조성했고, 장항준은 "남자가 총을 쐈다. 그리고 인질범이 경찰에 요구한 게 있다.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어달라고 했다"며 지강헌의 실명을 언급했다.
이어 세 사람은 인질극이 벌어진 9일 전부터 거슬러 올라가 "10월 8일 토요일 죄수 호송버스가 달리고 있었다. 죄수 25명을 태운 버스였는데, 안성 휴게소 앞에서 한 명이 일어나 소변을 보겠다고 요구했다. 교도관이 소변통을 건네는 순간에 '지금이다'라며 죄수들이 버스에서 폭동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25명 중 13명은 안전 감금을 택하고 차에 있었고, 나머지 12명은 재소자 카드를 찢은 뒤 권총과 실탄 5발을 챙긴 뒤 탈출을 했다. 그 중 2명이 당일 검거가 되고, 3명은 룸싸롱으로 놀러갔다가 검거되며 7명이 남게 됐다.
장항준은 "나머지 7명이 남았는데 그 다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3일 째 되던 날 경찰서에 전화가 왔다. 일반 가정집에 침입을 했다고"라며 "신고된 건 안암동의 한 가정집인데 새벽 2시에 대문이 열려있는 틈을 타 들어온 거다. 그 이후 서울 전 지역에서 반상회가 열렸다"고 덧붙였다.
이후 탈주범들은 마침 반상회가 열리지 않은 유일한 곳이었던 행당동으로 우연히 향했고, 그 이후부터 '인질 숙박'이란 신조어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됐다. 다음으로 탈주범들이 모습을 드러낸 건 집이 아닌 대학병원이었다. 당시 제약회사에 다니던 영업사원 A씨의 육성 인터뷰가 공개됐는데, 그는 "차 트렁크를 열고 물건 넣고 있는데 두세 명이 와서 칼을 댔다"고 말문을 열었다.
결국 A씨는 협박을 이기지 못한 채 문정동 자택으로 그들을 데려왔고, 그는 "지강헌이 우리 부부의 결혼반지를 찾아 돈을 얻기 위해 전당포로 향했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도움을 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4살 짜리 아들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고 생생하게 설명했다.
이어 세 사람은 지강헌이 함께 술을 마시며 속마음을 고백했다고 말하며 "부모 없는 집에 자라 물건을 훔치게 된 이야기, 전과자란 이유로 이발소에서 쫓겨 난 이야기, 꿈이 시인이란 것 등 삶의 애환을 인질들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탈주한 이유에 대해 지강헌은 "대한민국 비리에 대해선 모두 파헤치고 죽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으로 향하려 했는데, 그 이유로는 절도 혐의로 형량 7년, 보호감호제도로 10년을 살게 된 지강헌이 전두환 정부 당시 만들어진 보호감호제도에 보복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됐다.
동시에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은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의 얘기를 꺼내며 "76억 원을 횡령한 전경환이 형량 7년을 선고받는다. 심지어 7년을 다 살지도 않고 3년을 조금 더 살고나서 석방이 됐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은 지강헌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한 계기가 됐다고.
또 사건은 탈주범들이 검거됐을 당시로 흘러갔다. 탈주 7일 째 일당이 들이닥친 네 번째 집의 딸 B씨의 음성 증언이 공개됐다. 그는 "사람들이 우두두두 소리가 들어와서 봤는데 방에 탈주범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때 일흔이 넘으신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일당에게 건넨 말은 '밥은 먹었냐'였다. 저희 어머니한테 밥을 차리라 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B씨는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최초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지강헌이 나에게 '어떻게 죽는게 제일 멋있어 보이냐'고 물어봤었다. 또 그에게 성경책을 권했는데,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줄 수 있냐. 내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 마음이 되게 해달라'라고 요구했다. 무릎을 꿇고 같이 기도를 하다 엄청나게 울었다"고 고백했다.
B씨의 집에서 머문 1박 2일이 흐르고 지강헌 일행은 마지막 인질이 있던 북가좌동으로 이동했다. 장도연은 인질들의 인터뷰를 배경으로 "무시무시한 일당이었지만 담 밖의 모습은 달랐다고 하더라. 귀에 대고는 '미안하다. 정말 이런 생각이 없었다. 절대 다치지 않게 할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더라"고 안타까운 사연을 말했다.
장성규는 "탈옥범 중 당시 21살이었던 강씨가 승합차를 보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질의 집에서 혼자 나갔었다"며 "그런데 차가 없는 걸 확인한 강 씨가 다시 집에 들어오려 하자 지강헌이 강 씨 발밑에 총을 발사했다. 아마 '넌 나갔으니까 나간 김에 살아라. 아직 할 게 많다고 생각한 것 같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끝으로 세 사람은 지강헌 일당의 끝을 말한 뒤, 강 씨가 징역 15년에서 7년으로 형량이 확 줄어든 이유를 밝혔다. 장항준은 "지강헌 일당에게 붙잡혔던 인질들이 탄원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송은이와 장도연은 인질들의 탄원서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처음엔 모두 겁을 먹었지만 점차 이들의 행동은 모두 부드러워졌습니다. 이들 모두 마땅히 죗값을 치뤄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에게서 후회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고, 인간적인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라고 차분히 말했다.
그러면서 "아침밥을 먹은 이들은 '잘 먹었습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자기들이 떠나면 곧 신고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가고 우리 네 식구 모두 울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흐르는 눈물인지 모르겠습니다. 죄는 미웠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부디 이 탄원서를 읽으시고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셔서 세상의 좋은 등대지기가 되시길 기도합니다"라고 문장을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 = SBS 방송화면 캡처]
권혜미 기자 emily00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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