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배우 조진웅(45)이 호기심으로 시작한 영화 '사라진 시간', 자부심으로 남았다.
조진웅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사라진 시간'(감독 정진영) 개봉 기념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베테랑 배우 정진영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한 '사라진 시간'에서 조진웅은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사라진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필사의 추적을 펼치는 형사 형구 역을 맡았다. 그는 혼란에 빠진 인물의 예민함과 처절함을 세심하게 표현해내며 '믿고 보는 배우' 타이틀을 공고히 했다. 미스터리, 코미디, 스릴러, 휴머니즘 등 여러 장르를 계속해서 넘나들어 한 단어로 규정하기도 어려운 이 영화가 중심을 잡을 수 있던 건 조진웅의 공이 크다. 배우 정해균, 장원영, 신동미 이선빈 등과의 호흡도 맛깔스럽다.
정진영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편집을 했다. 이 과정의 시작엔 조진웅이 있었다. 정진영은 자신의 시나리오를 최초로 읽은 조진웅이 하루만에 출연을 결정하면서 스케일이 커졌고, 제작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밝혔던 바. 하지만 조진웅은 "하루만에 출연하기로 한 건 아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보고 싶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글을 썼는지. 그래서 제가 계속 물어봤다. 원작이 있는 거 아니냐고. 작업 공간에 들어가서 부딪히지 않으면 도저히 해석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건, 하루아침에 뭔가 달라졌다는 사람이란 것뿐이다. 이게 말이 되나. 너무 깊은 이야기다. 그래서 제가 직접 들어가서 결과를 봐야겠더라. 헛고생일지라도. 그래야 가치 있는 작업들을 할 수 있다"며 "이런 이야기들도 관객들에게 들려줘야 한다. 영화적인 향을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예술가들은 당위성을 가지고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거까지 신경 쓰기엔 골치가 아프다. 이건 해야 할 것이 있다고 봤다. 분명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이어 "시나리오보다 영화가 훨씬 좋다. 1차 편집본을 받았을 때는 충격적이었다. 너무 시나리오 의존도가 높다고 생각했다. 언론시사회 때 최종편집본을 처음 봤는데 너무 좋더라. 전달해야 하는 시퀀스에서 꼭 가져가야 할 지점들이 정확히 찍혀 있었다. 모호해지면 보기가 싫어진다. 아는 척 하는 거 같고, 삶을 가르치려는 거 같을 거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슴 속으로 저민 이유가 강요가 없어서다. 이게 굉장히 훌륭한 지점이다. 모호하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모호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모호함이 있었다. 제 영화 만족도를 매길 때 보통 6~7점을 안 넘는데, '끝까지 간다'가 8점이었다. '사라진 시간'도 여기에 버금간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히며 영화를 향한 깊은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라진 시간이었든, 뭐가 바뀌었든, 그 현상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표현해야 했어요. 그 현상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과 본질을 생각하는 거죠. 현실이 어떻게 됐든, 내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뿐이에요. 이 영화가 되게 어려운 거 같은데 사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영화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는 없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A더라도 B로 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굉장히 괴롭고, 원치 않는 삶이에요. 정진영 선배님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감독이 꿈이라서 연출부로 들어갔는데, 배우 단역을 하게 되면서 연기 인생이 시작됐잖아요."
배우 출신 감독인 만큼 소통도 수월했다. 조진웅은 "'사라진 시간'은 감독님이 직접 집필을 하셨다. 그게 아주 혁혁한 공을 세웠다. 싱어송라이터가 가진 장점이 발휘됐다. 만약 어디선가 다른 시나리오로 연출을 제안 받았다면 달랐을 거다. 자기가 직접 했기 때문에 말이 통한다. '이거 뭔지 알지?'라고 하는데, 사실 뭐 어떻게 알겠나. 그런데 이상하게 알게 되더라. 배우와 감독을 겸해서 굉장히 소통하기가 편했다"라고 남다른 호흡을 자랑했다.
"감독님도 제가 가려운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어요. 스크립트가 있으면 그걸로 보통 소통을 하는데, 배우 출신끼리는 눈으로 해요. 배우가 아닌 감독님들이 대부분인데 그 분들과 할 때는 설계를 듣고 하는 반면 배우 출신끼리는 감각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요. 사실 이번에 여유 있게 촬영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는데, 정진영 감독이란 사람이 굉장히 부지런했어요. 제가 했으면 병났을 거예요. 저는 노력형은 아니거든요. 연극 연출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작업을 할 때 한 시간 이상 회의를 안 했어요. 20분이 끝이었죠. 그런데 정진영 감독님은 세 시간 이상 못 주무셨을 거예요. 식사하는 시간도 아깝대요. 학구열에 불타더라고요."
형구와 같이 과거의 인생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새로운 삶이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면 어떨까. 조진웅은 "저는 배우만 아니면 될 거 같다. 여행가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연출이 쉽겠나. 제작팀이 쉽겠나. 본인의 직업을 20년 정도 하면 '그만할 때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제가 22년 정도 했는데, 매번 똑같은 거다. 그래서 오래하신 분들이 존경스럽다. 어떻게 매번 하시나 싶다. 분명 아플 거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조진웅은 "고민거리를 던지는 영화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이런 영화만 찾아보는 사람이 있을 거다. 저는 굉장히 잡식이다. '해리포터'도 엄청 좋아하고 '타인의 삶'도 좋아한다. 저 좀비물도 좋아한다. '#살아있다'도 빨리 보고 싶다"라더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경쟁이 어디 있나. 같이 먹고 살자"라고 너스레를 떨어 폭소를 자아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표현에 대한 고민들이 생겨요. 함부로 뱉지 말자는 생각이죠. 지금은 예전보다 심사숙고해요. 이번 작업은 더 그랬어요. 잘못 표현하면 시퀀스 자체가 틀어지거든요. 이런 장르 특성상 고민하기 시작하고, 그 고민에 깊게 들어가면 20년이 걸려도 못 찍어요. 그냥 단순하고 본능적인 감각으로 해결해야 하고, 그 순간에 느끼는 걸 표현해야 해요. 그래서 이 작업이 쉽지 않았어요. 그냥 그 상황 속에 나를 던져본다는 생각으로 했습니다."
한편, '사라진 시간'은 오는 18일 개봉한다.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