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인정해라."
롯데 자이언츠 우타자 정훈(33)은 2010년 입단 후 평범한 야구선수의 길을 걸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연속 100경기 이상 출전했다. 그러나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100경기 이상 나서지 못했다. 있으면 좋은 선수였지만, 없어도 롯데 타선에 큰일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랬던 정훈이 2020시즌 롯데 타선에 반드시 필요한 타자가 됐다. 주로 톱타자 1루수로 나선다. 그러면서 지명타자, 외야수로도 나선다. 3번, 5번, 6번 타순에도 종종 들어선다. 허문회 감독은 정훈을 공수의 중요한 연결고리로 여긴다.
5월 중순부터 내복사근 파열로 1달간 결장했다. 그러나 복귀 전이나 후에 타격 페이스의 변화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6월 타율 0.286으로 숨을 골랐다. 그러나 7월에는 26일 고척 키움전까지 0.333으로 좋다. 올 시즌 38경기서 타율 0.327 4홈런 26타점 29득점.
득점권에선 0.429로 더욱 강하다. 24~25일 고척 키움전서 제대로 보여줬다. 24일에는 4회초 1사 2,3루서 양현의 커브를 결승 2타점 중전적시타로 연결했다. 25일에는 7회 2사 만루서 한현희의 슬라이더를 공략, 2타점 좌전적시타를 뽑아냈다. 빅이닝의 물꼬를 튼 한 방이었다.
정훈의 변화는 스프링캠프에서 시작됐다. 허문회 감독은 "인정해라"라고 조언했다. 자신의 경쟁력을 스스로 냉정하게 파악해야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정훈은 26일 고척 키움전을 앞두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내 실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니까 부족한 점이 많이 보였다. 자극제가 됐다. 부족한 점을 채우다 보니 좋아지고 있다"라고 했다.
프로선수라면 누구나 자존심이 있다. 그러나 인정하는 건 롱런의 출발점이다. 정훈은 "대부분 인정하기 쉽지 않다. 못 치면 변명도 하게 된다. 나는 감독님에게 '인정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한 적이 있다"라고 돌아봤다.
찬스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정훈은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투수와 어떻게 싸우겠다고 정해놓는다. 그게 마음대로 안 되면 삼진을 당하기도 한다"라고 했다. 마음을 비우는 법도 깨달았다. "투아웃 만루는 노아웃, 원아웃보다 부담이 덜하다. 오히려 마음 편하게 타석에 들어간다"라고 했다.
2사이니 어차피 확률이 떨어진다고 보고 '못 쳐도 본전'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올 시즌 정훈의 만루 성적은 4타수 3안타 타율 0.750 6타점. 2사 후에는 44타수 25안타 0.568 2홈런 19타점으로 펄펄 난다. 무사(0.282), 1사(0.146)와 큰 차이가 있다.
엔트리에서 빠진 기간에도 꾸준히 현장에서 상대 투수들의 공을 봤다. 정훈은 "복귀해도 그런 공들을 봐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야구장에 오래 있으려고 했다. 감독님에게 부탁해서 그렇게 했다"라고 돌아봤다.
생각이 달라지니 타순과 포지션 의식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정훈은 "타순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1번 타자로서 출루를 생각하지만, 좋은 공이 오면 치는 게 우리 팀의 모토다. 상황에 맞게 기다리거나 친다"라고 했다.
계속해서 "포지션의 경우 유격수 출신이다 보니 1루를 해본 적이 없었다. 쉽지 않은 자리지만, 오히려 자주 하지 않던 포지션이다 보니 덜 부담스럽다. 마음 편하게 정면으로 오는 공만 잡으려고 한다. 공을 몸으로 막는 건 자신 있다"라고 했다.
잘 나가는 올 시즌. 그러나 정훈의 목표는 없다. "올해만큼은 누구 눈치를 안 보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대로 할 것이다. 세부적인 수치를 생각한 적이 없다"라고 했다.
[정훈.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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