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의 끝없는 여성혐오 생산, 그리고 방관자들 [이예은의 안테나]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만화는 만화로만." 창작의 자유라는 대단한 비호 아래 결국 여기까지 왔다. 언제까지 무지와 뻔뻔함이 철없는 순수함으로 포장되어야 하나.

웹툰작가 기안84가 또 도마 위에 올랐다. 그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복학왕-광어인간'의 내용이 문제였다. 여자 주인공 봉지은은 무능하지만 대기업 인턴에 떡하니 붙었다. 비결은 애교, 조개구이 깨부수기, 40살 팀장과의 열애, 성상납 등이다. 남자 주인공 우기명은 이런 봉지은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본다. 이는 삽시간에 여성 혐오 논란으로 번졌다. 능력 없는 여성이 스킨십으로 취업 문턱을 넘은 지점, 적나라한 조개 깨부수기 장면 등 구독자들은 기안84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협하다며 공분했다. 그러자 네이버웹툰 측이 뒤늦게 사과했고, 기안84는 조개 그림을 대게 그림으로만 수정했다. 언제나처럼 그의 입장은 없었다.

사실 기안84의 이번 논란이 놀랍지 않다. 그의 곁에 있는 방관자들이 사태를 키웠다. 여성 혐오 언행을 지적하면 '악플'로 취급했고 볼멘소리라며 귀를 막아왔다. 그러니 재현될 파문이었다. 본격 방송에 진출하면서 크고 작은 논란을 몰고 다녔지만 사회는 관대했다. 출연 중인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은 방패를 자처하며 열심히 수호했다. 논란이 있었던 날이면 기안84는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스튜디오에 등장했고 멤버들은 다독여주기에 바빴다. 기안84에게 향하는 비판을 그들이 어떤 태도로 수용하고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기안84의 무지함은 "순수해서 그래"로 여겨졌다. 무례함은 "철이 없어서 그래"로 포장됐다. 간혹 웹툰 내용이 혐오, 희화화, 비하 논란에 휩싸이기라도 한다면 "작품은 작품으로만 봐야 한다"라며 수많은 이들이 대신 목소리를 내줬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다. 고민 없는 무작정 비호가, 정당한 비판을 예민한 분노로 취급한 이들이 기안84를 정체하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복학왕-광어인간' 논란도 일부 여성들의 '트집잡기'로 바라보고 있다.

'복학왕-광어인간'의 내용을 풍자 의도로 그렸다면 완벽히 실패다. 취업 병폐를 신랄하게 표현하고자 했다면 여전히 팽배한 기업 내 혐오 문화, 성차별, 일명 '낙하산' 형식의 부정 취업 등을 적절히 활용했으면 될 일이다. 실제로 권력형 성추행 사례가 매일같이 고발되고 있는 가운데, 기안84의 묘사는 그 고발을 빛바래게 만든다. 노림수가 가득한 조개구이 묘사는 저급하기까지 하다. '김치녀', '된장녀' 라는 여성 혐오 프레임이 만연했던 지난날에 그대로 머물러있는 것이다.

기안84의 콘텐츠에 탄력을 받은 어긋난 성 인식을 가진 일부 네티즌들은 당당히 혐오 마인드를 전시하고 있다. 혐오적 콘텐츠 생산에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실수라고 해도 마냥 눈 감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다. 전파력 강한 저수준 문화는 제동이 없으면 끝없이 확산된다.

기안84의 수정 작업이 단순한 눈치 보기가 아니길 바란다.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길 바란다. 콘텐츠 생산자로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때임을 알길 바란다. 이미 대중은 기안84에게 수많은 기회를 안겼다. 혹자는 "이렇게 불편하게 살아서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라고 한다. 이렇게 불편하게 살아야 세상이 달라진다. 이렇게 불편하게 살아야 모두가 살 수 있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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