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란 가치는 보통은 숭고하게 여겨지며 종종 절대 선처럼 치켜세워진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한 '믿음'이 얼마나 위험하고 하나의 세계를 붕괴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지, 영화 '돌멩이'(감독 김정식)가 섬세하게 담았다. 시리고 차갑지만 온기 어린 시선을 놓지 않은 김정식 감독의 터치가 빛을 발한다.
8살의 지능을 가진 석구(김대명)는 정해놓은 규칙대로 매일 아침을 열어젖힌다. 김추자의 '꽃잎'을 틀고 서투른 손으로 로션을 바르고 닭장서 달걀을 꺼내 자전거를 타고 마을로 향한다. 기분 좋은 질주 끝엔 자신을 아껴주는 동네 사람들이 있다. 교감을 하고 나면 강가에 가 물수제비를 즐기고 운영 중인 정미소 일에 집중한다. 평화로운 일상을 반복하던 이런 석구에게 작은 균열이 생긴다. 아빠를 찾으러 서울에서 내려온 가출 소녀 은지(전채은)의 등장이다.
석구가 억울한 상황에 놓인 은지를 구해주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어른들에 냉소적인 조소만 짓던 은지는 석구 앞에서만큼은 제 나이에 맞는 미소를 내보이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은지가 머무는 쉼터의 김선생(송윤아)은 다 큰 성인의 몸을 하고 어린 소녀 은지의 곁을 맴도는 석구가 달갑지 않다. 이 과정에서 은지는 감전 사고를 당하고, 자신이 아는 응급처치를 취하던 석구는 아동성범죄자로 전락한다. 목격자는 김선생이었다. 석구는 모두에게 외면 받는다. 왜 사람들이 자신을 멸시하는지도 모르는 석구가 자의적인 힘으로 억울함을 풀 길은 없었다. 유일한 조력자인 노신부(김의성)는 그의 죄를 인정은 하지만 구제하겠다고 애쓴다.
지적 장애인의 성범죄 사건을 소재로 삼은 '돌멩이'이지만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대신 주변인들의 태도를 조명하며 인간의 알량한 오만함과 불완전한 믿음을 이야기한다. 생각하는 대로 보고, 답을 규정해놓고 바라보는 시선은 절대적인 믿음이 곧 절대적인 불신과 동일함을 알게끔 한다. 언제나 석구를 지켰지만 정작 그를 믿지 않고 '동정심'으로 죄를 사하려 들었던 김신부를 향해 "나 믿어요?"라고 말하는 석구의 대사가 곧 이 영화의 메시지다.
석구와 대척점에 서있는 김선생이 그를 곤경에 빠트리는 악인처럼 비치기도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고 있는 전지적 관객의 시점이다. 오해할 만한 상황을 목격했고, 그것이 곧 진실이라 믿으며 은지를 수호하려 뚝심 있게 달려들기에 무작정 비난할 수 없다. 이처럼 이 영화엔 선과 악이 명확하게 규정돼있지 않다. 여러 인물들에 입체적인 성격을 부여하면서 인간의 군상을 낱낱이 까발린다. 업소에서 여성을 사들여 석구를 성적으로 유린했지만 석구의 성범죄는 비난하는 오랜 친구들, 석구에게 죄가 있다고 믿으면서도 피해자 위치에 서있는 은지 측에 끊임없이 합의와 관용을 강요하는 김신부, 약자의 편에 서있는 청소년 쉼터의 소장이지만 석구의 내면에 있는 어린 아이는 외면한 채 장애에 편견을 씌워 성인으로만 재단했던 김선생처럼 말이다.
석구와 같은 이들을 향한 마녀사냥을 수면 위로 꺼내고 그 책임을 묻고 싶어 '돌멩이'를 만들었다는 김 감독의 배려와 진심은 영화 곳곳에 묻어나온다. 다만 지적 장애, 아동성폭력, 가출 청소년, 친구, 믿음, 사회 편견 등 너무 많은 걸 담아내려 해 간혹 과잉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때, 배우들의 유려한 완급 조절이 과잉을 막아준다. 김대명은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관객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훑는다. 대사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흔적이 엿보이는 몸짓과 깊은 눈빛으로 8살 석구를 훌륭히 탄생시켰다. 송윤아는 명불허전이다. 자칫 넘칠 수도 있는 캐릭터의 강한 성미를 깊은 감정 연기로 설득력 있게 담아냈다. '악역' 아닌 보통의 사람으로 분한 김의성은 카리스마 대신 따뜻한 감성으로 극의 무게를 더했다.
잔상이 진하다. 우리는 우리의 편의를 위해, 믿음과 편견을 지키기 위해, 왜곡을 기꺼이 환영하고 누군가에게 돌을 던진 적이 없었을까. '돌멩이'가 고민을 낳는다. 오는 15일 개봉.
[사진 = 리틀빅픽처스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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