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리뷰
차분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 위로 일렉트릭 기타가 천천히 멜로디를 그려 나간다. '엄마, 사랑해요'.'엄마'라는 이름은 기쁘면서 슬픈 이름이다. 때론 상처처럼 아프다 이내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이름이다. 그렇게 김창완이 37년 만에 기타를 잡고 밀어낸 문의 시작엔 엄마가 있다.
김창완이 오랜만에 낸 솔로 앨범 '문(門)'의 부제는 '시간의 문을 열다'이다. 엄마에게 사랑 고백을 하며 시작하는 이 앨범의 문이란 결국 '시간의 문'이었던 셈. 하지만 그 시간은 만만치 않다. 쉽지도 않다. 시간은 오롯이 내 것이 아닌, 내가 겪었지만 지나고 보니 남의 것 같은 시간( '노인의 벤치')일 뿐이다. 김창완은 자신과 동세대가 겪었고 또 태어났으면 누구나 맞이할, 멀어보여도 임박한 그 주름진 시간을 노래한다.
'노인의 벤치'와 '시간'이라는 곡이 앨범의 머리에 있는 건 때문에 우연이 아니다. 살아본 노인이 아직 덜 살아본 이들에게 "후회할 때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사실을 전할 때,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사람이 "쓸쓸한 어깨 위엔 달빛도 무겁다"는 걸 알게 될 때 음악은 그대로 철학이 된다.
이 음반에 흐르는 시간은 '지난' 시간이다. 하고 싶은 말은 지금 건네는 푸념이 아닌 추억을 담보한 고백이다. 후회에 저당잡힌 그 체념 앞에서 '꼬마야'는 '아가야'('자장가')가 됐고, 떠난 지 7년 누우신 지 3년 된 부모님('이제야 보이네')은 가슴 속 멍으로 남았다. "보고 싶어 어머니, 보고 싶어 아버지"가 전부인 '보고 싶어'의 가사는 이 모든 걸 눈물로 수렴한다.
기타는 김창완의 훌륭한 친구다. 부드러운 아르페지오와 스트로크, 단조롭게 울고 사라지는 솔로로 기타는 김창완을 가만히 안아준다. 물론 '개구쟁이' 김창완도 여전해 2020년대판 건전가요 같은 '글씨나무'와 수수한 동요 '옥수수 두 개에 이천원'은 산울림의 김창완이 심어둔 엉뚱한 반전으로 음반 뒤를 받친다.
앨범의 종점은 앨범의 시발점과 같이 기타 연주다. 엄마가 묻고 비가 답한다. 이 따뜻한 대구는 곧 이 음반의 모양새이기도 하다. '먼길'의 가사처럼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작품. 어쩌면 여는 '문(門)'이란 묻는 '문(問)'일 지도 모르겠다.
이 앨범에선 가루가 되어버린 노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야말로 "바람의 편지처럼 흩어지는" 그런 목소리다. 기타는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그 노인의 독백을 위해 허허로이 튕겨진다. 37년. 김창완은 젊은 시절 기타로 썼던 수필에 노인의 깨달음이라는 연필로 마침표를 찍었다. '문'은 '청춘'의 앨범 버전이다.
[사진제공=이파리엔터테이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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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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