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종합
건강 가득한 강진 풍류 밥상
코로나19 팬데믹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를 우울한 시대다. 너나 할 것 없이 면역력 강화가 생활의 필수 조건이 되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상이 된 지 오래이다. 그러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밥>이 대세인 시대를 살고 있다. 건강이 최상의 가치로 올라선 지금 건강 밥상은 우리 자신에게 선물하는 축원 덕담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허할 때 정성과 손맛이 가득한 따뜻한 한끼 밥상은 그 자체가 축복이고 위로일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 밥상의 백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필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남 강진 한정식이라고 단언한다.
유홍준 교수는 전남 강진을 남도 답사 1번지라고 했다. 강진을 남도 답사 1번지로 불렀던 건 강진의 맛과 멋 때문이었을 터! 유홍준 교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 미식 1번지로 <남도>를 꼽는다. 남도에서도 한정식을 가장 잘한다고 소문 난 고장이 바로 강진이다.
코미디 TV의 대표 먹방 프로그램인 <맛있는 녀석들>은 ‘먹어본 자가 맛을 안다’는 슬로건으로 전국 맛집을 탐방하여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강진 한정식을 소개한 바 있다. 소문대로 밥상이 푸짐했다. 커다란 교자상에 전라도식 고추젓, 표고 탕수, 갓김치를 올려 먹는 광어회, 장흥의 키조개 관자와 육회를 곁들인 삼합, 찐 해삼, 간장게장, 바지락회 무침, 비단 가리비, 전복, 피꼬막, 남도식 탕탕이, 떡갈비와 홍어삼합, 보리굴비, 갈비찜이 등장했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음식의 기본이 남도 강진에서 생산하는 건강한 식재료라는 점이다.
강진 음식 문화가 발달한 이유
강진 한정식의 뿌리는 궁중 음식이다. 그래서 맛이 깊고 기품이 있다. 강진 밥상에 궁중 음식이 더해진 사연은 여러 갈래다. 이 중 하나가 조선 후기 수랏간 상궁 한 명이 강진 목리(木里)로 귀향을 왔는데 목리 아낙네들이 그 집에 드나들면서 궁중 음식을 배웠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는 일제강점기 강진 대구면에 고려청자 가마터가 발견되면서라는 설이 있다. 일본 총독이 강진을 방문했는데 이때 강진 유지들이 서울의 궁중 요리사들을 초빙해 궁중요리가 강진 음식 문화와 어우러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런 이야기들을 배제하더라도 강진은 음식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우선 지리적으로 한반도 남단에 있는 강진은 해상교역의 중심지였다. 서해안과 남해안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점인데다가 서쪽으로 중국의 산둥반도와 연결되고 동쪽으로 남해안을 항해하여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에 통하는 길목에 있다. 일찍이 강진의 음식문화가 발달한데다가 다른 지역의 음식문화가 유입되기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 이런 사실은 신라 시대 최고의 무역상 장보고가 청해진 상단을 강진현에 꾸린 것만 봐도 여실히 알 수 있다.
강진군이 선택한 신산업
지리적 조건과 비옥한 농토와 영양이 풍부한 바다에서 얻은 건강한 식재료가 더해져 천년의 건강 밥상으로 태어난 강진 한정식은 시대의 트랜드를 앞서간 음식 문화다. 건강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절임과 삭힘의 미학이 응집된 기품 있는 음식문화를 보유한 전남 강진은 일찌감치 미래 신 성장 동력 산업으로 음식 산업을 선택했다. 핵심 과제를 명품 건강 한정식으로 삼은 건 시대를 앞서간 혜안(慧眼)이라고 본다.
<강진문화 관광재단> 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이승옥 강진군수’는 ‘강진의 맛과 멋’을 찾아 많은 관광객이 강진을 찾도록 음식 관광과 문화관광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농가 부가 가치 육성을 위해 유통 중심의 직거래 판매 활성화에 행정역량을 집중하고 농특산물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아울러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 창출이 이뤄지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는데 몸을 사리지 않는다. 일례로 전남도청이 위탁 운영하는 <남도장터>와 유튜브 채널 ‘국민안내양TV’가 진행 중인 남도장터 입점농가 홍보 방송 강진군 편에 직접 출연한 점을 들 수 있다.
가우도 망호 출렁다리 주차장 내에서 녹화중인 현장에 직접 등장한 ‘이승옥 강진군수‘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강진군 농특산물 생산농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강진군 농특산물 소비 촉진을 호소했다. 손자병법에 ‘목표를 세우면 전력을 다해서 매진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지금 강진군은 미래 성장 동력인 음식과 관광 산업 성공을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다산의 애민(愛民) 정신이 살아 있는 고장
강진은 다산 정약용 (1762년~1836년)선생이 남긴 무수한 발자취가 곳곳에 살아 있는 복 받은 고장이다. 조선 후기 개혁·개방의 학문을 실천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정조(正祖)의 총애를 받고 문신으로 봉직했으나, 신유년에 일어난 천주교도 박해사건 신유사옥 후 강진에서 18년 동안이나 유배 생활을 했다. 정약용 선생 입장에서 보면 고단한 세월이었지만 강진은 더 할 나위 없이 커다란 복을 받은 셈이다.
다산 선생은 강진에서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그가 추구했던 학문체계를 완성해 갔다. 당시 피폐한 농촌사회의 모습을 보고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다산 선생이 연구에 그치지 않고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방안을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를 통해 제시했다는 점이다. 다산 선생은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천재에 가까운 인물이다. 자연과학에도 관심을 기울여, 홍역과 천연두의 치료법에 대한 책을 냈고 도량형과 화폐의 통일을 제안했다. 또 건축기술인 거중기를 고안해 지금의 수원 화성을 축조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강진 다산박물관(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다산로 766-20)은 이런 정약용 선생의 삶과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공간이다. 다산의 정신을 현대적인 가치로 계승 발전시키고자 설립된 다산박물관은 강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자 문화시설로 전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다산박물관에는 다산의 정신을 연령 별로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다산 체험학습장, 다산실학의 본부 강진 다산실학 연구원이 있다.
조선 실학의 꽃을 피운 다산초당
강진에서 다산초당을 둘러보지 않았다면 앙꼬 없는 찐빵을 먹은 것과 다름없다. 강진만이 한눈에 보이는 만덕산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선생이 10여 년 동안을 생활하셨던 곳이다. 선생은 다산 초당에서 공직자의 덕목을 강조한 목민심서, 사회 경제 개혁의 원리를 제시한 경세유표, 관리들이 참고해야 할 형법 책 흠흠신서 등 6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집필했다. 복숭아 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날 정도로 집필에 몰두했던 곳 다산초당. 이곳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다. 다산 선생이 거처하였던 동암과 제자들의 유숙처였던 서암을 복원한 다산초당은 다녀갔다는 것만으로 자부심이 되는 곳이다.
천년의 신비를 빚은 강진 청자 ‘요(窯)’
전남 강진군 대구면과 칠량면 일대에는 고려 초기부터 후기까지 고려청자를 만들었던 가마터, 청자 요(窯)가 있다. 고려청자는 흙으로 만든 최고의 보물이다. 고려청자의 변천 과정을 대략적으로 짚어보면 고려 초기에는 아무 장식도 없는 푸른 하늘색의 순수한 청자가 만들어졌다. 그 후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그릇 표면에 그림을 파 새기고, 희거나 검은 흙을 메워 고르게 한 다음 초벌구이를 하고, 다시 유약을 발라 구운 상감 청자가 만들어졌다. 상감 청자는 고려자기 중에서도 우리 민족의 독특한 예술적 재능이 가장 잘 나타난 걸작이다.
매끄러운 도자기의 균형과 꼼꼼한 상감 기법, 그윽하고 우아한 비색을 띤 유약으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고려청자는 나라가 기울어지면서 시들어 갔다. 하지만 고려청자의 가마터는 전남 강진군에 가장 많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강진의 무엇이 고려청자의 본산으로 만든 것일까? 그건 바로 강진 흙에 있다고 한다. 강진 흙은 점성이 뛰어나 그릇의 형태를 만들기 좋고, 고려청자 특유의 푸른빛을 내는 데 꼭 필요한 산화 제2철이 알맞게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다가 해상교역의 중심지였던 강진의 지리적 특성 덕분에 고려청자의 본산으로 자리잡은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고려 시대 고려청자는 주요 수출품 중의 하나였다. 그렇기에 해상교역이 원활한 강진에 고려요를 많이 설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덕분에 고려청자의 주요 생산기지가 된 강진이 세상에 다시 드러난 건 1913년 전남 강진에서 고려청자 조각이 발견되면서 부터다. 당시 일본 총독이 강진군 대구면을 방문했을 때 궁중 음식이 따라왔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곳이 지금의 청자박물관 자리다.
이후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강진 일대에서만 188개의 가마터를 확인했다. 강진 고려청자 가마터는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1963년 국가사적 제68호로 지정되었다. 이렇게 발굴한 청자를 보관.연구.전시하기 위해 강진군은 1997년 ‘강진청자자료전시관’을 개관했다. 그리고 2007년부터 ‘강진청자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하고 있다. 고려청자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강진 청자박물관은 가족 나들이에 안성맞춤이다. 청자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청자 빚기 체험장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영랑의 시혼(詩魂)이 살아 있는 영랑 생가
강진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탄생한 대한민국 시(詩)문학의 산실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 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 날 / 나는 비로소 봄은 여윈 서름에 잠길 테요 / 5월 어느날 그 하로 무덥던 날/ 떠러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3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시인 이 절창의 시를 뽑아낸 영랑 생가는 중요민속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되었다.
시를 좋아하는 이들이 한번 쯤은 들려가는 명소로 각인되어 있는 영랑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영랑 김윤식 선생(1903~1950)은 남도의 사투리를 음악성 있는 시어로 표현한 서정시인이자 단 한 줄도 친일 문장을 쓰지 않은 민족시인이다. 영랑 선생은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80여편을 발표했는데 이중 60여편이 강진 영랑 생가에서 나왔다. 영랑 선생은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등과 더불어 현대시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 당시 문인을 중에는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에 동조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영랑 선생은 단호했다. 창씨 개명을 거부하고 강진에 칩거해 주옥 같은 시를 남겼다.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 영랑 김윤식 선생의 생가를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원형 그대로 보존 관리해오고 있는데 마음이 헛헛할 때 찾아가 보면 좋은 힐링의 명소다.
500년 호국 정신의 성지 전라병영성
강진군 병영면에 조선시대 전라도 병마절도사의 병영과 관련된 성곽이 있다.. 전라병영성(全羅兵營城)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년) 갑오경장까지 조선조 500여 년간 전라남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 총지휘 본부다. 병영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동학)을 때 불이 나 소실되었다. 이어 1895년 갑오경장으로 군제도가 바뀌면서 병영은 문을 닫았고 병영성 성곽만 남았다. 현재 성곽의 규모는 총 길이는 1,060m 높이 3.5m, 면적은 93.139㎡로 사적 3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전라 병영성은 서양에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소개했던 하멜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1656년 강진 병영으로 유배되어 7년 동안 살면서 노역했던 곳으로 전라 병영성 주변에 '하멜 기념관'이 있다. 하멜 관련 역사문화 유적지로서의 가치도 함께 간직하고 전라병영성에서 호국정신을 살펴보는 것도 삶의 의미를 더하는 것이라고 본다.
가우도와 망호 출렁다리
강진군 가우도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 명소로 뜨고 있다.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가우도는 2개의 출렁다리가 있다. 강진 대구면을 잇는 저두 출렁다리(438m)와 도암면을 잇는 망호출렁다리(716m)다. 출렁다리에 서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 하다. 가우도에는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생태탐방로 ‘함께해(海)길‘이 있다. 산과 바다를 감상하면 걸을 수 있는 2.5km 길은 천혜의 트레킹 코스로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가우도 정상에는 25m높이로 조성된 청자타워가 있다. 이 곳에서는 강진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하늘을 날아 활강하는 짚트랙(공중하강체험시설)의 짜릿한 스릴까지 만끽할 수 있다. 대한민국 100대 관광 명소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가우도에서 삶의 에너지를 채운다면 꽤 오래 갈 것 같다.
코로나19가 빼앗아 간 강진 축제
볼거리 즐길 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한 강진은 축제의 고장이기도 하다. 강진마량 미항 찰전어축제, 강진청자축제, 남도음식문화큰잔치, 강진만 춤추는 갈대축제 등 사계절 내내 흥과 신명이 돋았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축제가 전면 취소되었다. 2020년 강진에서 축제가 사라졌지만 다행히 건강한 풍류밥상과 건강 먹거리,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관광 명소 덕분에 방문객이 줄을 잇고 있다. 강진군의 철저한 방역태세 덕분에 코로나 청정지역으로 불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강진이 고향인 필자는 항구의 아름다움과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한 마량 미항을 주목하고 있다. 유서 깊은 만호 성터가 남아있는 마량항 사시사철 해산물이 넘쳐 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풍요로운 항구다. 전국 최초로 어촌어항 복합공간으로 개발된 마량항은 무공해 특산품과 청정지역의 신선한 회와 어패류를 저렴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마량 놀토 수산 시장에 가면 회뜨기쇼, 고려청자 즉석 경매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토요일 마량항 중방파제 일원에서 마량 토요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강진이 비대면 여행지 1번지로 꼽히고 있는 지금 마량 놀토 수산 시장 & 마량 토요 음악회를 오프라인과 병행해 온라인을 진행하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본다. 손안의 모바일 TV가 대세인 시대, 언택트 비대면 마량 놀토 수산 시장 & 마량 토요 음악회가 어떤 부가 가치를 불러올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필자 소개>
사단법인 한국축제문화진흥협회 이사장
대중문화 평론가
함양 산삼축제 총감독
대규모 행사기획 연출
양구배꼽축제 총감독
지리산 산청 곶감 축제 총감독
보성다향대축제 총감독
마포나루새우젓축제 총감독
남해 보물섬마늘축제 총감독
귀주대첩 1,000주년 관악 강감찬 축제 총감독 外 다수 역임
유튜브채널 국민안내양TV 기획제작
전라남도 남도장터 홍보기획 방송 기획제작
서울정원박람회
사랑의 행복콘서트 가요제
김제 효(孝) 콘서트
김정연의 효(孝).행복 콘서트 外 다수 연출
축제관련 TV토론. 라디오 출연. 포럼 패널. 강연 활동
KBS. MBC .UBC. TV 조선. MBN 등 토크쇼 출연
(現)문화체육관광부 ‘문화의 달’ 자문위원
(現)파주시 축제자문위원장 (문화경제분야)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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